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4)_아름답고 복된 언약 공동체를 이루라(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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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7-13본문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4)
아름답고 복된 언약 공동체를 이루라(시 133:1-3)
영광스러운 제사장 임직식
오늘 본문 시편 133편은 처음 이 메시지를 시작할 때 여러분과 함께 생각했던 본문입니다. 시편 133편은 대제사장을 임직하는 장면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이 임직하는 일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행사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제사장이 엄숙하게 기름 부음을 받는 자리에 함께 하면서 진정으로 기뻐하고, 또 이 제사장과 함께 앞으로 이루어 가게 될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의 임직식 장면을 노래하는 이 시에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다 하는 사실과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서 한 자리에 모여 성도의 교통을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도의 교통을 나누는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로써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3번 하나님 앞에 모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희 중 남자들은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모두 올라올지니라.” 이 말씀은 남자 혼자 오라 는 말씀이 아닙니다. 남자가 보호자가 되어 자기 가족 모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백성들의 공동체가 함께 모임
시편 122편을 보면 이때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즉 절기에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데 자기 가족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한 마을이 다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13살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이와 같은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온 마을 식구들이 다 같이 갔다가 다 같이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모든 식구들이 함께 갔습니다. 온 가정, 모든 식구, 어린 아이들까지 다 같이 함께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시편 122편 2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내 성문 안에 섰도다.” 시인은 도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이런 것들을 모두 생략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장면을 바로 이야기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전 쪽을 바라보니 엄청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예루살렘이 얼마나 아름답게 잘 건설되어 있는지 그러나 그것보다도 그 안에 골목, 골목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득 가득 밀려 성전을 향하여 올려가는 모습이 더욱더 장관이었습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이렇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모이고, 모이고, 모이고,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무너지면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찾아오는 일이 무너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코로나 이후 시대에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성도의 모임과 교제가 무너졌던 것처럼 예배와 교제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재앙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속히 예배와 교제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모이는 것을 등한히 하는 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가 지나갈수록 모임을 등한히 하고 모임을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일들이 더욱더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임직을 통해 하나 된 공동체
시편 133편을 통해서 또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공동체를 위하여 제사장을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세워 공동체를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임직하는 현장에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모두가 그 일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누리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으시는 것은 단지 직분자를 세운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백성들을 축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분들은 기름을 성령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부으시므로 직분자를 세우시는 데, 구약시대에는 그 일을 기름을 붓는 행동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에베소서 4장을 보면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주셨는데, 교회를 위해 주신 성령의 은사는 직분자들 이었습니다. 직분자들은 성령의 은사로서 교회를 섬기도록 세워졌고, 온 교회는 직분자들을 통해 복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론의 반차를 쫓는 대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으신 일은 성령을 부으신 일이었고,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시편 133편 3절에서는 이 축복을 헐몬 산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시온 모든 산에 이슬이 내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온 산은 메마른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먹고 살 수 있을까요? 헐몬 산은 만년설이 있는 산입니다. 만년설은 항상 얼음이 있는 산을 가리킵니다. 얼음이 녹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산골짜기로 맑은 물이 계속 쏟아져 내려오면서 그 지역에 수분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렇게 놀랍게 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제사장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으심으로 이 기름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에 차고 넘치도록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의 모습으로 임하는 축복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백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임할까요? 성도의 교통입니다. 4절을 보면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본문의 거기는 시온 산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보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복은 영생이었습니다. 영생은 글자 그대로는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단지 영원히 사는 것이 복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지옥 불의 고통 가운데에서 영원히 삽니다. 그것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이라면 “차라리 영생 안 하고 말지”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영생은 무엇일까요? 오래 사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러나 장수가 무조건 복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설문조사가 나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25%정도는 100세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분들이 건강에 대해서 경제적인 여건에 대해서 걱정을 합니다. “오래 사는데 아프면 어떡하나?” “아픈데 돈까지 없으면 어떡하나?”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이 최고는 아니다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은 무엇일까요? 영생은 안식과 같은 말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고,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하나님께서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시고, 그 얼굴 빛, 즉 하나님의 표정, 하나님의 눈빛, 하나님의 말씀, 이것이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게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영생과 안식을 우리들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의 교통을 통하여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절기를 주신 것은 바로 그런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스러운 영생과 안식을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 안에서 성도의 교통을 통하여 누리게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약교회 성도이 공동체 안에서 그대로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시편 73편 25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천국이 천국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든 땅이든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내가 하나님 밖에는 바랄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땅에서도 사모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어디나 천국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가 천국입니다. 그곳에서 성도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안식을 누립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우리는 형제자매
오늘 우리는 시편 133편에서 이와 같은 공동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를 형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가정,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이며 오늘 우리 교회공동체인 것입니다. 이사야서 63장 16절에서 선지자는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실을 내다보면서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이 현실을 두고 보지 않으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어려운 것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위험할 때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기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감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다릅니다. 형제자매가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성도들이 형제자매라 한들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요? 우리에게 이것이 실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현실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형제자매의 사귐과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 관계를 아름답게 보존하고,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사이에는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친밀함은 성도의 교통을 말합니다. 축도 속에서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감화, 감동, 역사, 충만하심이 성도의 교통 가운데 그대로 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명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지상에 제자들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자세하게 말씀 드리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더 이상 육체로는 지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몸을 남겨두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교회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이 자리에 육체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로 함께하시는 것과 같은 의미로서 교회를 지상에 두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그 몸의 지체가 되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지상에 이루고,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만들므로 지상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진정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도록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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