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2)_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롬 8: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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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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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2)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롬 8:28-30)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를 읽은 충격 

1985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의 일입니다. 우연히 『신학지남』 권두언의 글을 읽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스타일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그 글을 쓴 교수님의 논문을 모두 찾아 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썼던 글 중에 유독 하나의 글이 저에게 아주 강렬하게 도전하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생사 간에 유일한 위로”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생사 간에 유일한 위로, 이것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글인가? 그 글은 한 가지 사례를 들면서 생사 간에 유일한 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병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는데, 네 살짜리 아이가 “나에게는 하늘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영광스러운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네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굉장히 조숙하기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그런 사례들이 그 시대에는 흔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서 출판이 되었습니다마는 『아이들의 회심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8세기에 발행된 책인데 어린이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과 뉴잉글랜드에서 어린 아이들의 회심과 죽음 사례 모음집입니다 제목은 아이들의 회심 이야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의 죽음 이야기입니다. 그 책에는 아이들이 죽음에 임해서도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과 생명에 대해서 고백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고백하면서 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회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대는 유아 사망률이 아주 높은 시대였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낳지만 형제 가운데 어린 시절에 죽은 형제들이 아주 많은 시대였습니다. 교회에나 부모들에게나 아이들이 죽는 문제는 정말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죽을 때 예수 그리스도도 없고 소망도 없이 그냥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모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와 심지어는 죽었을 때 그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힘써서 가르쳤고, 그 가르침을 배운 아이들은 용기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문

“생사 간의 유일한 위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563년에 제정된 요리문답입니다. 이 요리문답은 청년들과 설교자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교리 교재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칼빈주의의 사상을 담고 있고 후에는 도르트 회의에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공식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생사 간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의 요리문답은 살아가는 동안의 위로, 죽을 때의 위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몸과 영혼이 모두 미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주께서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룹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존하시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다

위로가 되는 첫 번째 사실은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갈 때에도 나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에도 나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실감이 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문화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누가 지나가다가 차를 발로 찼습니까? 차 한쪽이 푹 들어가고 상했습니다. 그 때 내 차일 때와 내 차가 아닐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떻게 다를까요? 내 차가 아니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남의 차를 발로 차네” 하면서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가 내 차라면 어떻게 할까요? 굉장히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내 것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옆에 차가 찌그러지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차는 살짝만 긁혀도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것이 바로 나의 것의 의미입니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을 때도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에 대하여 누가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살피신다는 것입니까? 내가 죽을 때 누가 나를 그렇게 살펴보신다는 것입니까?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이 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나의 몸과 나의 영혼은 모두 미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의 삶을 살펴보실까요? 누가 그렇게 나의 삶을 애지중지할까요? 누가 나의 삶의 상한 것을 고치실까요? 누가 나의 삶을 지켜주실까요? 내가 죽을 때에도 나를 귀중하게 여기고 나를 품에 안으시는 분이 도대체 누구이겠습니까?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라는 이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 모릅니다.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나

나는 어떻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고” 마귀의 것이 되었고, 마귀의 나라 백성이 되었던 나를 빼앗아 자유롭게 해방 시키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니다.” 하늘을 나는 참새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어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머리털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돌보심이 세심하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셨고 나를 위하여 그 모든 고통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나의 삶을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죽을 때조차도 하나님의 품 안에 안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살든지 죽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문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실성과 영원성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8장은 바로 이런 사실들을 우리에게 아주 잠엄하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구원의 확실성과 영원성에 대해 논증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2절에서는 생명의 성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 안에 있어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속에는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중에 가장 첫 번째 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그는 지상에서 때로는 고통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겪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의 기도의 삶을 도우시고 그의 삶의 모든 순간순간을 도우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다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30절,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에게는 구원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을 향하여 구원을 시행하셨습니다. 29절은 구원의 계획을 말하고 30절은 구원의 시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 사람들을 부르시는 일로부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시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까요?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31절 이하에서는 그리스도인에게 각양 도전이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8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례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즉 그 누구라도.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은혜가 계속되게 하시는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역사 속에 확연하게, 분명하게 높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성령이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끝까지 하나님께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저는 세례 문답서를 정리하면서 성도의 견인 항목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성령의 견인이란 우리가 모든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도 참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견인은 우리 의지로 참겠다고 해서 이루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계속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우리에게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한 주간 동안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한 주일의 삶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계속되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 39절 마지막 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한량없는 위로와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는 동안 이 위로와 능력 안에 살게 될 것이며, 죽는 순간에도 그의 영혼에, 그의 마음에 이 위로와 평강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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