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설립의 비밀(7)_사역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행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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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2-30본문
교회 설립의 비밀(7)
사역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행 6:1-6)
초대교회의 탄생과 면면히 흐르는 기도
신약 교회가 설립될 때 기도가 어떻게 기초가 되었는지, 어린 교회가 거친 풍랑 속에서 성장할 때 기도가 어떻게 능력 있게 사용되었는지 우리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는 일과 더불어,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여기서 ‘힘썼다’는 표현은 기도를 삶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여긴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호흡처럼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계속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기도의 맥박이 공동체 전체에 힘차게 뛰고 있었기에, 초대교회는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영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 변장된 축복
교회 공동체에는 늘 기쁘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듯이, 복음의 역사가 강력할수록 그를 저지하려는 어둠의 세력도 거세졌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운 사건 이후, 예루살렘의 믿는 자의 수는 남자만 5,000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부흥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부흥의 소식 뒤에는 박해자들의 서슬 퍼런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복음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고,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위엄 있게 경고하며 신문했습니다. 교회로서는 설립 이래 가장 큰 시련이자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경 앞에서 교회는 절망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상황을 ‘변장된 축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시련이 없었더라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는 위대한 복음의 정수는 역사 속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는 선포를 통해 교회가 세상 권세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현장은 인간의 변명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오롯이 증명되는 가장 강력한 은혜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성장 : 숫자와 성숙의 상관관계
사도행전은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기록하며 교회의 외적 팽창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진정한 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교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성장이라고 부르지만, 성경이 말하는 성장은 숫자를 넘어선 영적 성장과 인격의 성숙을 동반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성장은 단순히 몸집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의 비율이 공동체 내에서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직면한 내부적 위기는 바로 이 ‘성숙의 속도’와 ‘숫자의 증가 속도’ 사이의 불균형에서 발생했습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교회에 들어오는 것은 한순간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믿음 안에서 자라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인고의 시간과 교육, 연단이 필요합니다. 숫자는 3,000명, 5,000명씩 늘어나는데 그들을 이끌고 품어줄 성숙한 일꾼들의 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다수의 대중이 모인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내부적 갈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격의 변화보다 앞선 숫자의 증가는 교회를 견고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혼란의 불씨가 될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역에서 터져 나온 갈등의 불씨
역설적이게도 초대교회의 갈등은 가장 은혜롭고 기쁜 사역의 현장인 ‘구제와 봉사’에서 발생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는 헌신적인 기부 행렬이 이어졌고, 교회는 그 풍성한 재정으로 가난한 과부들과 소외된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온 교회가 기뻐하며 찬송하던 이 사역 뒤에서 예기치 못한 원망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당시 공동체 내에는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이 섞여 있었습니다. 비주류였던 헬라파 사람들은 매일의 구제 사역에서 자신들의 과부들이 홀대를 받는다고 느끼며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실무를 담당하던 사도들이 의도적으로 차별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문제는 사도들이 이 방대한 행정 사역의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 전파와 기도를 위해 부름받았으나, 급격히 커진 조직의 실무를 모두 직접 챙기려다 보니 한계에 부딪힌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일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구조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중간에서 조율할 완충 지대가 없었습니다. 모든 불만은 곧바로 사도들에게 향했고, 사도들은 구제 사역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을 놓치고 마는 영적 과부하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조직이 겪었던 부흥의 성장통이었습니다.
청년부 리더 훈련을 통해 본 공동체 변화의 원리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가 어떻게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지 한 가지 실질적인 예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과거 제가 청년부를 담당하며 리더들을 훈련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리더들은 사회생활과 학업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었습니다. 모임 날짜를 하나 잡으려 해도 각자의 일정을 우선시하다 보니 결코 의견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끝이 나지 않는 배구 경기처럼 서로 자기 사정이라는 공을 떠넘기기에 바빴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개인의 사정은 잠시 내려놓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가장 좋은 날짜를 먼저 확정하자. 그리고 나머지 개인의 일정은 그날에 맞춰 조정하자.” 처음에는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한 자매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바쁜 일정을 모두 수정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불꽃은 삽시간에 전체 리더들에게 번져나갔습니다. “나보다 더 바쁜 저 자매도 저렇게 하는데, 내가 내 일정만 고집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거룩한 도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입술의 말은 “안 됩니다”에서 “돕겠습니다”, “제가 바꾸겠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리더들이 변화되자 청년부 전체가 역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더 놀라운 사실은, 리더들이 모여 치열하게 사역하던 그 시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무명의 중보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변화는 세련된 프로그램이나 경영 기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헌신과 그 배후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즉 기도의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역의 우선순위 재정립: 본질로의 회귀
원망의 원인을 진단한 사도들은 매우 단호하고도 지혜로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모든 제자를 불러 모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결코 구제 사역이 가치 없다거나 낮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역자가 붙들어야 할 사명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천명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모든 실무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구제와 재정 업무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일곱 명의 집사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들이 세운 대책은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사역의 위임이며, 둘째는 본질 사역에의 전념입니다. 사도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선언하며, 영적 지도자가 머물러야 할 가장 거룩한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가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다방면에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말씀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일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의 자리를 잃어버린다면, 그가 행하는 다른 모든 활동은 종교적인 기술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역자도, 행정에 능한 사역자도 가장 먼저는 말씀 사역자여야 합니다. 말씀에 평생을 걸고, 기도에 삶을 던지는 이 본질적인 태도가 회복될 때 교회는 다시금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성경적 일꾼의 자격: 전문성보다 영성이 먼저다
사도들이 실무를 위임하기 위해 세운 일곱 집사의 자격 요건은 우리에게 큰 통찰을 줍니다. 교회는 효율성만을 따지는 공장이 아니기에, 일꾼을 세우는 기준도 세상의 기업과는 달라야 합니다. 사도들은 사회적 경력이나 기술적 전문성을 1번으로 꼽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을 사람은 반드시 믿음과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전문 지식만 가지고 교회 일을 하려 들면, 생각하는 방식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공동체에 은혜가 아닌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저의 40년 목회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전문적인 식견이 곧 교회 사역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일꾼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성령 안에서 빚어진 지혜입니다. 인간적인 수완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공동체로부터 얻는 신뢰와 인격적인 칭찬입니다. 이 영적 자격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문성은 오히려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을 도구로 사용할 때, 비로소 그 사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들에게 유익이 됩니다.
말씀이 왕성한 공동체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열매
초대교회가 사역의 질서를 바로잡고 성경적인 일꾼들을 세워 본질로 돌아갔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열매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사도행전 6:7)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구제가 완벽해졌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다”는 기록입니다. 사역자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일꾼들이 성령 충만함으로 각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때, 공동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왕성해지니 성도들은 그 권위 앞에 순종하게 되었고, 교회는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영향력은 교회의 담장을 넘어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완고한 종교 지도자들, 즉 제사장들의 무리까지도 복음 앞에 굴복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사람의 설득이나 조직의 힘이 아닙니다. 말씀 공동체가 진정으로 이루어질 때 뿜어 나오는 거룩한 아우라와 생명력이 세상의 가장 완악한 마음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분명한 이정표를 발견합니다.
첫째, 사역자는 기도의 맥을 붙잡고 말씀의 본질에 전념해야 합니다. 저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결단하겠습니다. 다른 부차적인 행정이나 실무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성도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이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무릎 꿇는 일에 저의 남은 삶을 전력투구하겠습니다.
둘째, 성도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자격증이나 화려한 경력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여러분의 영적인 성숙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 믿음을 1번으로 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공동체 안에서 칭찬받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교회의 도리를 다할 때, 우리 서대신 교회는 숫자의 부흥을 넘어 질적인 성숙을 이루는 능력 있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점점 더 왕성해져서, 이 시대의 차가운 완고함과 어두운 폐역함을 넉넉히 이기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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