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트립의 메시지(4)_보름스 :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시 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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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1본문
비전트립의 메시지(4)
보름스 :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시 46:1-3)
보름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은 보름스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과 그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46편 1절로 3절의 말씀을 읽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이 자신의 큰 도움이 되사 세상의 모든 환란과 재난과 어려움 중에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믿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마르틴 루터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우리는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불렀습니다. 루터는 황제의 소환을 받고 보름스에서 열리는 제국 의회로 가는 중 기왓장들이 마치 마귀처럼 자기를 둘러싸고 덤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움이 되시니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때의 생각을 시로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보름스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라이프치히 논쟁 후에 로마 교황은 루터에게 파문장을 보냅니다. 교황의 사자가 파문장을 가지고 독일 곳곳을 다니면서 루터는 파문당했다고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루터에게 와서 파문장을 전달합니다. 루터는 파문장을 받고 나서 자기는 더 이상 로마 교회의 관할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 파문장을 불태워 버립니다. 파문장을 불태워 버린 이 사건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교황이 파문을 하면 황제조차도 두려워 덜덜 떨고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파문장을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도 비텐베르크에 가면 루터가 파문장을 불태웠다는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큰 참나무가 있고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루터는 파문장을 불태우면서 로마 교황에게 정식으로 대항하게 됩니다.
루터의 담대한 선언
그러던 중 1520년에 스페인 왕으로 즉위하고 신성 로마제국 황제가 되는 카를 5세가 루터를 보름스에서 열리는 제국 의회로 소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의 소환을 당했을 때 루터는 이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병이 들면 들것에 실려서라도 반드시 갈 것이고,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다 할 지라도 반드시 가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주변의 알립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100년 전 체코의 얀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을 당했을 때 황제가 안전 통행을 약속했지만 이를 뒤집고 그를 여관에 가둬놓고 공의회에서 이단 판정이 나자마자 화형을 시킨 일이 있다고 예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황제가 안전 통행을 약속하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루터는 보름스에 가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진리를 증거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521년 4월 2일 루터는 비텐베르크를 출발하여 1521년 4월 16일 화요일 오전 10시 마침내 보름스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17일 오후 4시에 보름스에 있는 대성당으로 소환을 당하게 됩니다. 2시간을 기다려 오후 6시에 드디어 황제를 비롯한 독일의 선제후 6명, 공작 백작 후작 이런 귀족들과 각 도시의 대리인들 이 앉아 있는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루터는 자기의 대리인 한 사람만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황제와 귀족들이 단 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단 아래 테이블 위에는 루터의 책들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이프치히의 논쟁에서 활약했던 에크가 심문관이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묻습니다. 첫 번째로는 ‘여기 있는 이 책이 루터 너의 책이냐?’ 루터의 대리인이 책을 살펴보고 루터의 책이 맞다고 확인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 책들에서 주장한 것을 철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에크는 황제가 눈 뜨고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황제의 권위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황제의 권위로 얘기할 때 그 앞에서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있겠습니까? 루터는 하루만 여유를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날 모임이 끝납니다. 황제와 로마 교회 측에서는 ‘이제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이고, 밖에서있던 수천 명의 군중들은 ‘루터가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루터의 자서전을 보면 전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본인은 그 자리에서 단번에 거부하기보다는 하룻밤에 여유를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루터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전날처럼 오후 4시에 출두를 했습니다. 전날처럼 2시간을 기다렸다가 황제 앞으로 소환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그 자리에서 역사에 남을 놀라운 말을 하게 됩니다. 그는 최후 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 또는 명백한 논증에 의해 논박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시키려면 황제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과 합리적 논증, 즉 명백한 논증, 이 두 가지로만 철회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황제의 권위로때문에 철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교황의 권위로때문에 철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으로 철회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말씀을 믿은 자기의 양심입니다. 이 두 가지가 아니면 철회할 수 없다는 엄청난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류 역사 속에 이러한 개념으로 어떤 권위와 권세에 대항하고 자유를 이야기했던 경우는 없습니다.
루터의 선언의 의미
루터의 이 선언은 엄청난 선언이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 또는 명백한 논증에 의해 논박당하지 않는 한, 즉 ‘하나하나 잘못됐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이란 말입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서나 명백한 논증에 의해서 잘못되었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현재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습니다.” 루터는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과 명백한 논증 이외에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속에 이미 들어와 나의 정신세계가 그로 인해 정돈되어 있고, 내 이성이 진리의 말씀을 납득했는데 무슨 권위로 이것을 철회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황제가 뻔히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루터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함으로 자기의 진술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아멘.”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요? 황제가 많은 귀족들과 함께 루터를 불러낸 바로 그 홀을 가리키겠죠. 그러나 그 홀에 오기까지의 여정, 많은 억압과 온갖 종류의 비방과 논쟁 속에서 그가 발견한 진리를 선포하고, 발표하고,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그는 지금 이 자리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자리였습니다. 진리에 충성하고 진리에 순종하다 보니 도달하게 된 자리였습니다. 그가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진리가 그의 마음을 정복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가 진리에 붙들리지 아니하였더라면 그 자리에 올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는 진작 자기의 모든 것들을 포기했을 겁니다. 진리가 아니었다면 그는 권위 앞에 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는 진리의 권세 앞에 굴복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오는 것은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 가려고 자기가 계획한 바가 없습니다.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진리를 증거하다 보니 그 자리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진리의 인도하심이었고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하다 보니 그 자리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치므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루터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루터의 자리에 함께 설 수 있기를
이번에 7월 27일부터 시작되는 비전 트립의 모든 참여자들이 루터처럼 그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년에 제가 종교개혁 투어를 하는 중에 보름스에서 루터의 자리에 저를 대입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뜩하기만 했습니다. 제가 무슨 수로 저항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루터처럼 이렇게 명확하게 성경의 증언에 의해서, 또 명백한 논증에 의해서, 자기의 주장이 잘못이라고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는 한,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루터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렇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볍게 ‘아멘’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볍게 ‘은혜받았습니다.’ 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루터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즉 어떠한 억압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의 양심은 이 진리를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부인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된 자기의 양심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말씀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말씀에 정복당하고 말씀에 속박된 양심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정말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된 양심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큰 세력이라 할지라도, 어떤 그 권세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설 수 없으며 하나님의 권세를 침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진리의 세계를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비전트립에 대한 기대와 권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전 트립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바로 내일처럼 다가오는 비전트립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참여하는 분들에게 당부드리는 말씀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참석하면 많은 도시를 방문하는데 그냥 비슷비슷한 인상만 받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것을 보게 될 터인데 이런 모든 것들이 나중에 다 섞여 ‘짬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공부하고 정리 정돈을 하고 가야 합니다. 현지에서도 매일 브리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미리 공부를 해야 브리핑이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브리핑도 머릿속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사진을 많이 찍어도 나중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면 그게 그것일 것입니다. 사진만 봐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도 나중에 보면 다 그게 그것 같고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부를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주일마다 오후예배 후에 공부를 하게 될 터인데 모두 참석을 하시고, 가능하면 중고등부 학생들을 참여시키시는 부모님들도 참석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도 아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에 진행되는 비전트립이 단순한 행사로 끝나지 않고, 우리 자녀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 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순간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 일을 위해 몇 년 동안 기도하고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비전트립이 은혜 중에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여정에 주님이 인도하시고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동참하는 비전트립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고,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순종하며 걸어갔던 루터처럼, 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그 걸음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놀라운 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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