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2026년 새해의 신앙원리(2)_기회 지나가기 전에 기도하라(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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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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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의 신앙원리(2)

기회 지나가기 전에 기도하라(시 126:1-6)




첫 주일 예배에 부른 찬송의 의미

2026년의 첫 주일 예배를 맞이하며 우리는 "넓은 들의 익은 곡식"이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혹자는 "새해 첫 주일부터 왜 추수감사절 찬송을 부르는가?"라고 의아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찬송의 분류는 편의를 위한 것일 뿐,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는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장례 찬송이라 할지라도 천국 소망을 담아 평소에 부를 수 있듯이, 추수의 찬송 또한 새해 첫날에 선포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찬송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번 주간 제 영혼을 강하게 울린 특별한 선율 때문입니다. 한 주 내내 제 마음속에는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라는 가사가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반복되었습니다. 다른 노래를 불러보며 그 울림을 잠재우려 해도, 조금만 지나면 다시금 "기회 지나"라는 선율이 제 마음의 골짜기를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사는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였습니다. 저는 이 찬송의 울림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왜 이 기도를 제 마음속에 계속 머물게 하십니까?" 그때 깨달은 것은 우리에게 '때'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가 있고, 섬길 때가 있으며, 무엇보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우리는 인생의 황금 물결을 보지 못한 채 허성세월하게 됩니다. 2026년이라는 이 소중한 기회의 문턱에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 영적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2026년, 방치할 수 없는 영적 위기와 기회

목회자로서 2026년을 맞이하며 제 마음속에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답답함과 위기감이었습니다. 예년과 달리 성도님들 사이에서 새로운 한 해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나 영적인 기대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가라앉아 있는 듯한, 혹은 영적으로 침체되어 방치된 듯한 분위기를 보며 "이 상황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내적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 개인적인 직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주시는 사인(Sign)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기도합시다." 원래 가사는 "추수합시다"이지만, 저는 이 가사를 기도로 바꾸어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열심 있는 일꾼"은 곧 "기도하는 일꾼"을 의미합니다. 기도의 무릎이 살아있는 일꾼들이 일어날 때, 우리 교회는 2026년의 황금 들판을 추수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보며 한숨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들면 우리 앞에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황금 물결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현실은 힘들어도 믿음으로 바라보면 추수할 것이 가득합니다. 이 기회를 잡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의 결단

전도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엄중히 권고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여기서 말하는 '청년의 때'란 단순히 생물학적인 나이 20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이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즉, 우리에게 아직 소망이 있고, 무언가를 결단할 수 있는 의지가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청년의 때'이자 '기회의 때'인 것입니다.

성경은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비가 오고 나면 하늘이 맑아질 것 같지만, 우리 인생에는 비가 온 뒤에 곧바로 더 짙은 구름이 몰려오는 설상가상의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런 어둠의 때, 아무런 기운도 남지 않은 때가 오기 전에 우리는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분이든, 공부를 하는 학생이든, 가정을 돌보는 분이든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기회는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경영 능력이나 지식으로 그 기회를 잡으려 하지만, 잠언 16장 1절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기도가 없이는 내게 찾아온 기회가 기회인 줄도 알지 못하고 흘려보내게 됩니다. 기도로 깨어 있을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포착하고 그 기회를 승리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6편: 포로 귀환의 기쁨 뒤에 찾아온 현실의 벽

오늘 본문인 시편 126편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의 노래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의 종지부를 찍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 그들은 "꿈꾸는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혀에는 찬양이 넘쳤습니다. 이방 나라 사람들조차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고 경탄할 만큼 놀라운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감격도 잠시, 예루살렘에 도착한 그들 앞에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땅은 70년 동안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주변 민족들의 끊임없는 방해와 경제적인 궁핍함은 그들의 열정을 앗아갔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전 기초만 놓은 채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허성세월하며 방치하게 됩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예루살렘에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기쁨으로 출발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현실은 여전히 척박할 수 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이 환경을 핑계 대며 주저앉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서", "주변의 방해가 심해서"라며 20년을 흘려보낸 유다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를 소망하며 4절의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남방 시내(Wadi)의 신비: 메마른 땅에 흐르는 은혜의 강

여기서 말하는 '남방'은 '네게브' 사막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평소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돌산과 모래 사막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갑자기 시내가 흐르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강력한 폭우가 내릴 때입니다. 사막에 무슨 홍수냐고 하겠지만,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리면 메말랐던 골짜기가 순식간에 거대한 강줄기로 변해 물이 콸콸 흐르게 됩니다. 이를 지형학적으로 '와디(Wadi)', 즉 건천(乾川)이라고 부릅니다.

시인이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라고 간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의 현실은 비록 네게브 사막처럼 메말라 있고, 성전 재건은 멈춰 있으며, 삶은 궁핍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면 이 황폐한 골짜기가 순식간에 생명의 강으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와디'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리 파도 물 한 모금 나오지 않는 메마른 현실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순식간에 풀리기 시작합니다. 막혔던 재정의 문이 열리고, 관계의 골짜기에 사랑이 흐르며, 멈추었던 영적인 성장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 남방 시내의 역사를 일으키는 열쇠가 바로 '기도'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의 영적 원리

이제 시인은 이 믿음의 기도를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연결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라는 말은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심정으로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낙심될 때, 성전 재건이 막혀 답답할 때, 유다 백성들이 해야 했던 일은 원망이나 포기가 아니라 '울며 기도하며 씨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생활의 염려 때문에 사명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으며 내게 주어진 일터와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사명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씨를 뿌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씨앗에 생명력을 불어넣으십니다. 내 힘으로 뿌릴 때는 그저 작은 씨앗일 뿐이지만, 기도가 담긴 씨앗은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만나 남방 시내와 같은 폭발적인 결실을 보게 됩니다.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수많은 여인이 뒤를 따르며 가슴을 치고 통곡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28)

이 말씀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때를 대비하여 기도로 무장하라는 엄중한 명령이셨습니다.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희 자녀 세대에 일어날 것이니, 지금이 바로 울며 기도해야 할 때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음성이 들립니다. 2026년이라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은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는 점점 더 거세지고 영적인 가치관은 혼탁해져 가는 이 시대에, 부모의 눈물 어린 기도가 없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황금 물결의 추수를 맛볼 수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 자녀들이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유산입니다.


기도하며 씨를 뿌리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2026년의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한 해를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유다 백성들처럼 20년 동안 사명을 방치한 채 환경만 탓하며 지내시겠습니까? 아니면 기도로 남방 시내의 역사를 끌어당기시겠습니까?

이번 한 해, 우리의 신앙 원리는 명확합니다. "기도하며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사업의 현장에서 기도로 경영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그 일터가 선교지라는 마음으로 기도로 성실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님들은 기도로 사랑과 신앙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우리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갈 때, 비록 지금은 눈앞에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시간표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저 멀리 남방의 매마른 골짜기 위로 은혜의 비구름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은혜의 강물이 우리 삶을 덮칠 것입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기도합시다." 이 찬송의 울림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2026년이라는 황금 같은 기회를 기도로 붙잡으십시오. 그리하여 올 연말, 우리 모두가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고 고백하며, 기쁨으로 가득 찬 곡식단을 안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 보좌에 닿을 때, 척박한 광야는 옥토가 되고, 멈추었던 성전 재건의 역사는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로 여는 2026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도약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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