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2)_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롬 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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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25본문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2)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롬 11:33-36)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의 송영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의 송영(Doxology)으로서 매우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넘어설 수 없고 온전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탁월함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깊도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언제 감탄합니까? 엄청난 광경이나 진리를 마주했을 때 우리 인간은 저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전 설악산을 가기 위해 옛 미시령 휴게소에 차를 세운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속초 쪽을 향해 동해를 내려다보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저절로 "와!" 하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일제히 그 앞에서 "와!"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것이 바로 존재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 즉 '감탄'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연을 보며 감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좋은 경치를 보고 나면 꼭 떠올리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삼겹살'입니다. 산에 가든 바다에 가든, 그 아름다운 자리에서 삼겹살 구워 쌈 싸 먹는 걸 그렇게들 좋아하십니다. 감탄의 끝이 먹는 즐거움으로 끝나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것을 좀 넘어섰으면 좋겠습니다. 감탄의 순간에 삼겹살이 아니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라는 고백이 먼저 터져 나와야 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별과 달이 그분의 솜씨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웅장한 대자연을 보며 삼겹살을 구울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 그 지혜와 사랑을 떠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바울의 감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이
사도 바울은 지금 무엇에 대하여 "깊도다!"라고 감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놀라움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바울이 왜 이 시점에서 감탄했을까요? 그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인간의 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신칭의), 성화의 과정,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해 길게 설명해 왔습니다. 특히 9장부터 11장까지는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 경륜을 다루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이방인과 유대인을 교차하여 구원하시는 그 비밀한 섭리를 다 설명하고 나니, 바울의 지성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의 거대한 지혜 앞에 압도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내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영역이다"라고 고백하며 찬송의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1.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34절에서 바울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 능력, 즉 이성적인 측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그 탁월한 지적인 설계를 인간이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2.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이 질문은 모사도 없고 조언자도 없는 하나님의 독창성을 의미합니다. 현대어로는 '스태프'나 '전문 고문'을 의미하는 '모사'는 지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을 계획하고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을 때, 옆에서 아이디어를 보태거나 조언을 해준 존재가 단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벽하며 독립적입니다.
3. 아무도 상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
35절에서는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이는 "누가 하나님께 구원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그 보상을 받겠느냐"는 뜻입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냈습니까? 누가 죄인을 대신해 중보자가 죽어야 한다는 '대속의 원리'를 제안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천사가 이 아이디어를 냈다면 하나님께서 상금을 주셨겠지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부터만 나온 것입니다. 심지어 사탄조차도 하나님의 이 계획을 마지막 순간까지 몰랐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며 축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실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하나님의 탁월하심
결국 사도는 36절에서 만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탁월하심"입니다. 누구라도 그것을 보게 되면 "아, 정말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인정하고 무릎 꿇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분의 본질적인 뛰어남입니다. 많은 분이 자신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탁월하신 영광을 날이 갈수록 더 깊게, 더 넓게, 더 높게 깨닫는 것입니다. 지식만 늘어난다고 믿음이 자라는 게 아닙니다. 그 지식이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하는 참된 지식이어야만 신앙의 성숙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식은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헌병'에 대한 제 경험으로 비유하고 싶습니다.
1. 무서운 줄 몰랐던 시절
오래 전에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헌병들이 검문하던 시절이 잇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검문소에서 헌병이 올라와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찬 링에서 나는 '차르륵' 소리나 칼 같은 바지 주름을 보며 그냥 멋있다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한 번은 버스 손잡이를 잡고 버티며 비켜주지 않았던 적도 있습니다. 무서운 줄 모르니 용감했던 것이죠.
2.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신앙
하지만 군인이 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휴가증을 들고 나갈 때 헌병을 마주치면 괜히 마음이 쫄리고 겁이 납니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도망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창을 다녀온 친구들에게 헌병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반면에 제가 전방 교회를 방문할 때 헌병이 지프차와 오토바이로 '컨보이(호위)'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 본 헌병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멋진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경험과 시점에 따라 헌병에 대한 지식이 달라지듯,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점차 확장되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나를 감시하는 무서운 분으로만 알았다가, 나중에는 나를 호위하고 인도하시는 영광스러운 분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다"라는 문장 하나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의 탁월하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전능과 지혜와 권세와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과 사랑하심이 영원하고 무한하신 분이다.“
1. 무한함과 영원함: 존재의 차원
인간은 유한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시는 분(편재성)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현재라는 시간에 고정된 우리와 달리 과거, 현재, 미래에 동시에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4차원, 5차원을 공부할 때 그림을 보며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인간의 지성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차원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를 통해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기에 충분할 만큼을 알려주셨습니다.
2. 성품의 탁월하심: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
비공유적 속성이란 전지전능, 무한함, 영원함 등 하나님만이 가진 절대적인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 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성품이 너무나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분 안에서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공유적 속성이란 공의, 인자, 진실, 사랑 등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닮아가는 특징입니다. 우리는 불의를 보면 화가 나고 인자함을 베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공의는 늘 한계가 있고 변질되기 쉽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만이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와 하나님의 사역
1.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삼위일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는 인간의 종교 사상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1+1+1=3이 아니라 1이 되는 이 신비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이 구분되지만 본질은 하나라는 이 탁월함은 세상의 어떤 종교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적 영광입니다.
2. 하나님의 삼중 사역: 창조, 섭리, 구속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보며 "역시 하나님이시다!"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창조와 보전: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도록 유지하시는 사역입니다.
섭리: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끌어가시는 경영입니다.
구속: 죄인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탄하며 읽은 말씀이 바로 이 구속의 탁월함에 대한 고백입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 하나님을 아는 지식
존 칼빈은 제네바 요리문답 제1문에서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만 그 영광을 깨닫고, 그 영광을 깨달아야만 하룻강아지 같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참된 경건'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그 지식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그 영광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만듭니다. 사장님을 몰라주는 직원이 사장님을 대우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성장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성장입니다. 오늘 바울이 내뱉은 "깊도다!"라는 감탄이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도 터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미시령의 경치를 보며 삼겹살을 찾던 수준을 넘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에 감동하고 그분의 구원 계획에 찬송을 돌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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