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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메시지(2)_오직 성경② (벧후 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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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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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메시지(2)

오직 성경② (벧후 1:20-21)


종교 개혁 당시와 현대 가톨릭의 비교

지난 주일 비텐베르크 방문 당시 청년 한 명이 던졌던 질문을 계속 생각하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당시 가이드 선생께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에 대해 축하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며 스크랩했던 신문 기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저에게 ‘종교개혁 당시 로마카톨릭과 현대의 카톨릭은 다른가?’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말씀하다가 대답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솔라 스크립투라’로 넘어갔었던 것입니다. 현대 가톨릭은 종교 개혁 당시와 비교할 때 몇 가지 측면에서 현저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놀랍도록 변화가 없습니다.


1. 도덕적 부패와 교회의 타락

종교 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교황의 도덕적 타락과 교회의 부패였습니다. 교황이 사생아들을 낳고 그 사생아들이 교황직을 세습하는 일, 그리고 돈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성직 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당시 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가톨릭은 이러한 도덕적 타락과 부패의 측면에서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과거와 같은 교황의 부패나 공공연한 성직 매매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교회가 내부적으로 자정 노력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2. 면죄부와 여덕 사상

그러나 면죄부 문제는 종교 개혁 당시와 전혀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면죄부 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때때로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발행하며, 이는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실제로 2006년에도 로마 교황은 특정 지역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에게 면죄부를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면죄부가 사라지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 근거가 되는 ‘여덕 사상(Treasury of Merit)’이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덕 사상은 구원받기에 넘쳐나는 덕을 쌓은 성인들의 공로를 모아놓은 보물 창고가 있으며, 교황이 이 보물 창고에서 덕을 꺼내어 누구에게나 나누어줄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는 주장입니다. 루터는 이 사상을 허구라고 비판했지만, 가톨릭은 여전히 이 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3. 칭의(稱義) 교리

종교 개혁의 핵심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칭의 교리의 회복이었습니다. 루터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입장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종교 개혁 당시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행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인들은 ‘7성례’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미사에 참석하며,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해야만 공덕을 쌓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공덕 사상과 연옥 교리는 현재에도 가톨릭의 중요한 교리이며, 이를 통해 교회는 신자들의 삶을 철저하게 통제합니다. 교회 생활에 소홀하면 연옥에서 고통받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가르치고, 살아있는 가족들이 면죄부를 구입하거나 미사를 봉헌하면 연옥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일부에서는 루터교와 가톨릭이 칭의 교리에 대해 일치 선언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합의일 뿐입니다. 실제로 양측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으며, 단지 '일치 선언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일치를 만들어가자'는 명분적인 노력일 뿐입니다. 이는 내용적인 일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치를 선언하여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4. 종교 개혁 이후의 강화된 교리

놀랍게도 로마 가톨릭은 종교 개혁 이후 오히려 자신들의 교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교황 무류성(Papal Infallibility)을 선포하며 교황의 권위를 성경적 권위와 동등한 수준으로 높였습니다. 즉, 교황이 교황의 직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교서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황의 권위에 맞서 오직 성경을 외쳤던 루터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 숭배는 종교 개혁 이후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마리아 무죄설을 통해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수준까지 나아갔으며, 현대에 세워지는 마리아상 중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지 않은 형태가 많습니다. 이는 마리아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5. 성경에 대한 태도

성경에 대한 태도는 그나마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Vulgata)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허용하고 성경 공부도 적극적으로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 공부의 목적은 '가톨릭 교리를 공부시키고 삶을 선행으로 인도하는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진리를 깨닫는다는 개혁주의의 입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오직 성경으로'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루터가 살았던 16세기 유럽은 교황과 교회 회의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압도하는 시대였습니다. 루터는 이러한 흐름에 맞서 '오직 성경으로'라는 정신을 통해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회복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더욱 교묘해진 오늘날, '오직 성경으로'라는 정신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18세기 이후 서양에서는 합리주의 철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 즉 신적인 영역을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종교 현상'에 대한 학문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받지 못하고, 수많은 종교 현상 중 하나로, 한 종교의 경전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오늘날은 더욱 심각합니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득세하면서 절대 진리 자체가 부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규범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성경을 바라보는 '오늘 우리의 상황'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즉, 성경의 저자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게 성경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해석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습니다. 성경에 명확히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해석학은 그 시대의 '평화'라는 맥락을 들어 오늘날에는 여성이 잠잠하면 오히려 불란이 될 수 있으므로, 여성에게 역할을 주는 것이 성경의 본래 의도에 부합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명문화된 성경 구절이 정반대로 해석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또한, 성경 외의 다른 계시를 인정하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알게 되는 '일반 계시'의 능력을 과도하게 높여, 다른 모든 종교들을 정당화하고 구원의 길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특별 계시'로서의 고유한 위치를 잃고, 다른 종교의 경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격하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 개혁의 정신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조차 성경의 권위를 당연시하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을 자기의 생각과 가치관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세대 후에는 성경의 권위가 더욱 무너져서 우리의 신앙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성경 위에 세워야 한다

더 나아가, 이 문제는 우리 다음 세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가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배우고 오직 성경의 정신 위에 굳건하게 서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심각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 세대 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 암담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저 개인에게도 큰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비전 트립 이후 이주일 동안의 학문적인 공부는 저의 앞날에 대한 명확한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미 학문이라고 하는 세계에 발을 들이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다음 세대가 이러한 깊은 영적이고 사상적인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늦었지만, 그래도 제가 직접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좀 더 기도하며 주님께서 이 길을 열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늦었을지라도 학문의 세계로 뛰어들어,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주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학자들의 논문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성경의 정신이 모든 교회의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고, 모든 성도들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성경의 정신을 바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오직 성경의 정신이 다시 한번 이 땅에 부흥하게 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일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뜻을 모으며, 함께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견고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오직 성경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성경만이 진리임을, 성경만이 우리의 삶과 신앙의 유일한 기준임을 확신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시대적 도전과 혼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항상 계속되는 교회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 개혁의 정신을 다시 한번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 로비 벽면에 있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는 개혁주의 교회의 모토처럼, 종교 개혁은 이미 끝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흔들리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경의 가르침을 삶의 유일한 규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관점과 상황에 따라 임의로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성경이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겸손하게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진리의 영광을 목도하고,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된 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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