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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메시지(6)_오직 믿음 ②(롬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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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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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메시지(6)

오직 믿음 ②(롬 1:16-17)


복음의 선포와 흔들림 없는 믿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그리고 중세 교회를 개혁하고 이 교회를 새롭게 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그 위대한 모토,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의 교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교리는 오직 믿음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며, 이 믿음으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완전히 성취된다는 복음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종교 개혁의 굳건한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인생 전부를 걸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가 너무나도 쉽게 변질되고 도전받는 이 녹록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이 오직 믿음의 교리에 대한 도전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첨예하게 이루어져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그리고 더욱 교묘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라고 부르는 이 거룩한 교리가 변질되거나, 혹은 그 변질을 시도하는 거대한 물결들이 여전히 우리의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시대에 이 거룩한 교리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도전을 받아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살펴서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더욱더 명확하고 견고하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의 말씀 위에 우리의 신앙 전체를 건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영원한 도전, 트렌트 공의회

당연하게도 이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격렬한 도전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복음을 선포하던 시기, 즉 1545년에 트렌트라는 곳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의회, 다시 말해 총회가 열리게 됩니다. 이 총회는 1563년까지 장장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확립된 교리는 로마 가톨릭과 종교 개혁 진영이 영원히 하나의 교회가 될 수 없는 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개신교와 천주교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천주교도 현대에 들어와서는 많이 변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트렌트 공의회라는 역사적 시점을 기점으로, 로마 가톨릭은 종교 개혁자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그 모든 외침과 호소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중세 교회의 교리적 체제와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성경으로부터 멀어진 교리적 체계를 확립해버렸던 것입니다.


주입된 의(Infused Righteousness)의 오류

트렌트 공의회에서 이신칭의와 관련하여 그들이 확립한 가장 치명적이고 핵심적인 교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주입된다고 하는 주입된 의(Infused Righteousness) 사상입니다. 이는 주입된 은혜라고도 불리며, 구원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 주입된 의 사상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로마 가톨릭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마치 약물을 주사 놓듯,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라는 실체적인 요소가 우리의 영혼이나 마음, 혹은 몸 전체 안에 실제적으로 주입되어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약물이 우리의 혈관 속을 돌며 우리 몸의 일부가 되고 그 몸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의(義)**라는 실체적인 덩어리가 우리의 몸 안에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주입된 의가 우리의 몸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우리의 본성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도록 노력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로마 가톨릭이 말하는 성화의 과정이며, 동시에 구원의 완성 과정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이란, 이 주입된 의를 평생토록 노력하고, 선행을 행하며, 미사나 고해성사와 같은 성례에 꾸준히 참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주입하고 채워 넣어서, 마침내 우리가 의의 덩어리, 즉 완전한 성인이 될 때 비로소 구원의 완전함에 이르게 된다는 사상인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의롭게 하다'라는 헬라어 동사를 **'의롭다고 선언하다'**는 법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의롭게 실제로 만들다'**는 주입적인 의미로 해석함으로써 이 주입된 의 사상을 교리적으로 옹호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평생 노력했는데도 구원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주입된 의가 다 채워지지 않고 한 부분이 부족한 상태로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 사람은 곧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연옥(Purgatory)**이라는 곳에 가서, 이 주입된 의의 나머지 부분을 고통 속에서 채우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살아있는 자녀나 친척들이 면제부를 사줌으로써, 연옥에 있는 자를 도울 수 있다는 사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면제부는 다름 아닌, 예수님과 성인들이 쌓아 넘쳤던 넘치는 의(Supererogation), 즉 공로의 보물 창고에 대한 일종의 보증서와 같아서, 인간의 공로의 양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교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위와 공로를 구원의 필수적인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성경의 복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인 것입니다.


개혁 교리의 핵심: 법정적인 칭의(Forensic Justification)

그러나 우리는 로마 가톨릭의 이 주장과 근본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다릅니다. 우리는 의(義)를 주입되어 우리의 실체가 되는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를 실체적인 덩어리가 아닌, 오직 법정의 선언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칭의는 '그렇다고 인정하다', '그렇게 여기다', 혹은 **'그렇게 간주하다'**라는 법률적인 용어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죄인의 본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끊임없이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고도 기적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수동적 순종의 공로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모든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던 능동적 순종의 모든 완전한 의가 전적으로 우리에게 **전가(Imputed,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이 아닌, 하나님의 법정에서 유죄가 아닌 무죄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또한 하나님 나라 영원한 기업의 상속자로 선언하고 인정하시는 이 놀라운 일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모든 신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 칭의의 교리는 주입된 의와 달리, 구원의 완성을 위해 우리가 의의 덩어리가 될 때까지 평생 고군분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율법적인 부담감과 족쇄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켜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는 우리가 채워나가야 할 미완성된 의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완성된 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공로를 오직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인간론의 차이: 전적 타락인가, 부분 타락인가?

이처럼 칭의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의 차이는 결국 인간의 타락에 대한 이해, 즉 인간론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1) 로마 가톨릭의 인간론 (부분 타락):

로마 가톨릭은 인간의 타락을 설명할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자연과 초자연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본래 모습인 **자연(인간성)**은 타락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선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보았고, 오직 **초자연(하나님의 은혜)**만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가 상실된 부분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상실되었던 초자연, 즉 은혜가 주입되어서, 남아 있는 **선한 인간성(자연)**을 가지고 이 주입된 은혜를 꾸준히 키워나가 본성 자체가 완전하게 될 때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공로가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는 교리인 것입니다.


(2) 개혁 교리의 인간론 (전적 타락):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은 타락했을 때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믿고 선포합니다. 전적 타락이란, 인간의 어떤 한 부분, 즉 선한 의지나 선한 능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자연과 초자연, 혹은 인간성과 은혜의 둘로 나누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며, 인간의 모든 생각과 의지와 감정은 죄의 오염 아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전적 타락 교리는 구원의 본질을 완전히 뒤바꿉니다. 인간의 어떤 부분도 타락하지 않고 남아 있어서 그 위에 은혜만 채워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 생각과 의지, 그리고 전인격적으로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법정적으로 선언(칭의)**되고 덧입혀짐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받는 길, 즉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대의 분별과 복음의 선포

우리가 로마 가톨릭을 대적하기 위해 이 교리들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진리를 분명하게 분별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그 가르침에서 벗어난 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남아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트렌트 공의회에서 확립된 교리가 철회되지 않은 한, 그리고 주입된 의와 성덕 교리에 근거한 인간 공로 사상의 신학적 근거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개혁 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이신칭의 교리에 있어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 교파와 천주교 간의 **"이신칭의에 대한 합의 선언"**들은 결코 전체 교회와 교단이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며, 신학적 합의 없이 일부 관계자들이 서둘러 진행한 성급하고 오류가 있는 선언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교 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오직 믿음만으로라는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복음의 진리야말로, 오늘날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율법주의적인 행위와, 인간의 공로를 앞세우는 모든 사상으로부터 건져내는 생명의 구명줄입니다. 우리가 행한 어떤 선행이나 공로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와 감격을 표하며, 이 진리 위에 흔들림 없이 굳게 서서, 이 생명의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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