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설립의 비밀(1)_기도로 세워진 교회 (행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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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11본문
교회 설립의 비밀(1)
기도로 세워진 교회 (행 1:12-14)
교회 창립 기념과 설립자 해밀턴 선교사 소개
오늘은 우리 교회가 교회 창립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로 이제 76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설립하신 분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오셨다가 나중에는 미국 정통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재입국을 하셨는데, 그때 그분이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플로이드 유진 해밀턴 선교사이며, 한국 이름은 함일돈입니다. '함일돈'으로 검색하면 이분에 대한 일대기와 사역, 사상 등이 단편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서대신교회를 세우던 당시의 역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연대가 틀리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1948년을 교회가 세워진 해로 지켜오다가, 제가 이분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기록해 놓은 기록(Memoire)을 얻게 되었습니다. 출판된 책이 아니라 타이프 쳐서 복사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당시 상황을 찾아보니 이분이 우리나라에 와서 서대신 교회를 세울 때의 연대가 1949년 5월 18일 부산항에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949년 5월에 입국했지만 몇 개월의 준비 기간 후에 교회를 시작한 것으로 보아, 11월 첫째 주를 교회 설립 기념주일로 지키던 것은 그대로 두고 1948년으로 되어 있던 것을 1949년으로 수정하여 지금 이렇게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해밀턴 선교사님이 남긴 기록을 볼 때 해밀턴 선교사는 1949년 5월 18일에 부산항에 입항했습니다. 배에서 내릴 때 음악 연주가 있었는데, 이때 이분이 들었던 음악이 “주 예수 이름 높이여”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이 찬양을 들으며 드디어 한국 땅에 두 번째로 오게 된 것입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여”를 찾아보니 우리 찬송가에 36장과 37장 두 장이나 똑같은 가사로 된 찬양이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찬송 소리를 들으면서 1949년 5월 18일, 6.25 발발 약 1년 조금 전에 우리 나라에 입국을 하게 됩니다. 이분이 1890년생이므로, 49년 재입국 당시 우리나라 세는 나이로는 60세였습니다. 애초에 이분이 30살이던 1920년 1월 4일, 평양에서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결의할 때 현장에서 격렬하게 반대했던 분입니다. 그 일로 인해 일본 경찰에 의해 가택 연금을 당하고, 1940년에는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본국으로 돌아가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을 여러 교회와 기관을 섬겼습니다. 주로 기독교 학교 계통의 연합회에서 총무로 일했으며, 틈틈이 교회 목회 사역도 했습니다.
재입국, 서대신교회
기독교 학교 협의회 총무직을 마감하고 공직에서 은퇴한 후, 이후의 사역을 고민하다가 가족들이 다 모인 성탄 시즌 휴가 때 "한국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선포하고 바로 한국으로 가는 준비를 했습니다. 이분은 원래 동부(뉴잉글랜드, 뉴욕 근처) 출신인데,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부산에 들어왔습니다. 먼저 와 있던 다른 선교사들과 캠프에 들어와 몇 개월 있다가 독립하여 동대신동의 적산가옥을 빌렸는데, 2층은 가족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고, 1층은 주일학교와 작년 예배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얼마 있다가 우리가 있는 이 서대신동 교회 자리로 오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 온 지 채 1년이 안 되었을 때, 서울에 볼일을 보러 올라갔다가 주일날 기차를 타고 오려던 계획을 바꿔 토요일 기차표를 끊어 내려오는데, 그 새벽에 6.25가 발발했습니다. 전쟁이 나자 미군은 한국에 있는 미국 사람들을 모두 부산항으로 모아 배를 태워 무조건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사모님과 목사님은 따로따로 가게 되었고, 일본 동경에 가서야 겨우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귀국하지 않고 미군 정보 기관의 통역으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님이 있던 부대가 양정에 있던 하야 부대(지금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음)였습니다. 그 부대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 미군 부대의 협조로 자재들을 가져다가 교회를 짓게 되었는데, 이 교회가 오늘날 벽돌 건물을 짓기 전까지 목재 건물로 남아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골격은 그 당시 미군 부대에서 가져온 자재로 지은, 미국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하얀 칠을 한 나무 목재 건물의 형태였습니다. 선교사님은 오래 사역을 하지 못하고 바로 미국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평양에서 가르쳤던 한국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이분에게 와서 통장을 빌려 달라고 했고, 선교사님은 제자들을 생각해서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통장이 결국 대포 통장이 되어 미군 달러를 환전하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로 고발되고 결국 6.25 전쟁이 끝나기 전에 한국에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미국에 가서 사역하다가 1969년에 교통사고로 소천하셨는데, 그 말년이 참 안타깝습니다.
해밀턴 선교사의 신학적 유산과 사역의 중요성
선교사님이 교회를 세우고 건축은 하였지만 결국 일찍 떠나는 바람에, 그 후에 우리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국인 사역자들이 계속 교체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초창기 목사님들이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 분이 23년 동안 사역하면서 교회를 안정시키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교회가 신학적인 문제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이단들이 창궐하던 시대(전도관, 용문산파, 통일교 등 6.25 전후로 생긴 이단들)였는데, 우리 교회도 혼란을 겪다가 안정을 찾고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해밀턴 선교사님은 신학적으로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평생 사역했던 분입니다. 이분은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현대 신학, 현대 사상, 세대주의 전천년설, 진화론 등 현대주의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논증했습니다. 특히 창세기 주석을 통해서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과 진화론에 대해 확고하게 성경적인 입장을 세웠고, 로마서 주석을 통해 복음을 세웠으며,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해 복음의 자유를 확실하게 세웠습니다. 저는 해밀턴 선교사님의 사상과 활약이 지금도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분이 직면했던 역사 현실과 그분이 했던 사역들은 지금도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사님을 통해 세워진 교회이며, 이 선교사님은 현대 자유주의의 진화론, 현대 철학,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최전선에서 학문적으로 논증하고 바른 교회와 신학을 세우기 위해 힘썼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이것을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교회들이 많지만 이와 같이 선명하게 교회의 모습이 분명하게 세워진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설립자로부터 지금까지 선명한 신학적 혹은 사상적 계보 가운데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신학적 전통은 구(舊) 프린스턴 신학의 정통 장로교 신학입니다.
교회 설립의 비밀
지난 주까지 종교개혁의 메시지가 끝났고, 오늘부터는 ‘교회 설립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새 메시지를 선포하겠습니다. 이 메시지는 오래전에 제가 신학생 때 구했던 워런 위어스비(Warren Wiersbe) 목사님의 『교회가 기도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서 떠오른 것입니다. 이 책은 초대 교회가 세워질 때 무엇으로 교회가 세워졌는지를 통해 현대 교회를 세우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은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 혹은 교회를 새롭게 할 때, 많은 분들이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조직과 제도를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프로그램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프로그램 개발, 조직 개편 등입니다. 목사님들도 매년 이런 문제로 고심하며 제도를 만들고 조직을 바꾸고 프로그램도 새롭게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살리는 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적 자원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즉 훈련된 일꾼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꾼 양성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현실적이기에, 당연히 일꾼을 만들려고 합니다. 훈련된 일꾼, 헌신된 일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지만, 훈련시켜도 지원을 안 하고 헌신을 이야기해도 순종하지 않는 일들로 고통당합니다. 세 번째는 재정입니다. 교회에 헌금이나 기부가 있어 재정이 든든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재정이 많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없으면 돈이 없어 못 하겠다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때로는 무리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네 번째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관공서나 정치 지도자와 연계를 맺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어 협상력을 확보하며, 그 정치에 동감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교회에서 있었던 일들이지만, 한국 교회라고 해서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인간의 힘 대신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가 교회를 개척하거나 새롭게 할 때, 혹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결정적 순간에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요? 위에서 말한 네 가지는 물론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정적으로 의지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인간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의지하여 성공하면 인간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일을 교회가 힘써 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실 때 언제나 세 가지를 가지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 성령, 기도입니다. 나머지 문제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우리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말씀과 성령과 기도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하나님은 교회를 이것으로 세우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최근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일로 여러분들을 책망하거나 몰아붙일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워런 위어스비의 메시지에 “목사가 기도해야 교회가 살아난다”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기도해야 합니까? 목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회개했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 안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제가 기도를 안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기도를 안 한다면 목사가 더 기도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목사가 더 기도하여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목사가 채워야 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길은 제시하지만, 부족한 것은 목사가 채워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함께 가야 합니다. 본문 말씀도 “함께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신하고 함께 노력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시대에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76주년을 맞이하면서 앞으로 우리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말씀과 성령과 기도로 이 교회를 더욱 세워 나아가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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