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기도하라(3)_기도의 교제가 없는 것에 익숙한 그리스도인 (약 5:13-16)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4-12-26본문
모든 일에 기도하라(3)
기도의 교제가 없는 것에 익숙한 그리스도인 (약 5:13-16)
기도의 본질, 서로 기도하라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 가지 교훈 가운데 특별히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자는 ‘고난 가운데 기도하라, 병든 자는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당연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도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나 병든 사람은 당연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들이 기도의 본질을 교훈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자는 특별히 ‘병든 자가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즉 교회의 사역자들을 청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든 자가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혼자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청하여 기도하라.’ 누구를 청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기도하는 사람을 청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역자를 청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즉 사역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기름은 당시 민간요법으로 사용하는 약용 연고나 허브 오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바르는 것은 정상적인 치료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것은 정상적인 치료 행위를 행하되 반드시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다음 16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기도의 교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이 혼자 기도하느냐?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 혼자 기도하느냐? 물론 그는 당연히 기도하겠죠. 그러나 그는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기도를 부탁하고, 또 그 기도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 기도에 대한 교훈에서 가장 핵심 되는, 그리고 결론이 되는 것은 ‘서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
왜 우리는 서로 기도해야 할까요?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서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나보다 기도의 능력이 더 큰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기도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도 역시 우리와 동일한 사람입니다. 17절을 보면 엘리야에 대해 말씀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엘리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특별하게 기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가 역사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기도 하고, 고통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참된 평화와 은혜를 입기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교제입니다. 지금 저자는 바로 그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기도하라. 그런데 서로 기도할 때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기도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역자들은 또한 특별히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또한 더 들으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기도하지만, 그러나 혼자 기도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기도는 공동체의 기도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기도는 가장 작은 단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교회의 기도라도 2만 명, 3만 명 크기의 교회의 기도와 동일하게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라고 해서 낙심하지 말라. 작은 숫자의 기도라고 해서 멸시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해 이번 주에 새롭게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서로 기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기도할 때 최소 단위는 두 사람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혼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함께 기도하고, 또 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사도
교회에는 기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도의 본질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의 나눔이 성도의 교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사도가 로마 교회에 가기를 원했던 이유, 또 로마서를 써 보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 사역자로서 로마 교회 성도들과 진리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즉 ‘사귐을 위하여’ 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3절로 14절까지의 말씀을 강해하면서, 이것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더 높은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에서 3년 동안 사역하던 메시지들을 요약해서 그들과 진리의 교제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진리의 나눔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진리의 나눔과 함께 항상 항상 한 짝을 이루는 교제의 또 다른 면을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교제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각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면서 인사 말씀으로 언제나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한다. 늘 기도하고 있다. 내 기도 제목은 이것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참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도는 성도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 사도가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30절 말씀을 보면 “너희를 권하노니 너의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에베소서 6장 19절을 보면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하면서 기도 제목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을 보면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하면서 기도의 제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8절 말씀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한다. 그리고 너희도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기도의 교제가 사도의 기도의 가르침입니다.
누구보다 기도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
사도는 왜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을까요? 그가 기도를 부탁한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기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를 통해 놀라운 역사들을 많이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 기도의 능력을 많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대로 응답하겠다는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기도를 더 깊이 알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그는 자신의 기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도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고 더욱 간절하게 소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11절 말씀을 보면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라고 하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교역자가 혼자 잘난 것이 아닙니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를 위하여 기도한 그 사람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은사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께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얻은 은사를 가지고 섬겨 그의 섬김을 받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선순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하니라.” 많은 성도가 그를 위해 기도하면 할수록 자기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이,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이 임하여 더 많이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도 믿고 기도했지만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성도들이 기도할 때마다 기뻤했습니다. ‘성도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나에게 임하고 내가 하나님의 일을 더 능력 있게 더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존재하는 기도의 교제입니다. 이 기도의 교제가 성도들의 삶도 복되게 할 것이고, 사역자의 사역도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는 더욱더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 교회로 더욱더 발전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도 바울은 왜 기도 부탁을 할까요? 이분은 기도 부탁을 안 해도 능력으로 역사할 수 있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더욱더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본질은 서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는 것과 교회에는 반드시 기도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찾아가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어떻게 제게 오십니까? 제가 당신에게 가서 세례를 받아야지요’라고 말씀합니다. 황송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에 순종하는 것이 합당하다. 세상적인 지위나 그의 어떤 권세나 능력이나 이런 것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우리가 합당하게 여겨 그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자세가 오늘 우리의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항상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합니다. 내 마음으로는 부끄러워서 그럴 수도 있겠고, 여러 가지 다른 사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순종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믿음의 자세가 정말 필요합니다. 말씀의 나눔과 진리의 교제가 나의 영혼을 살리고, 내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며,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고 능력 있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사도는 이러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늘 성도들을 위하여도 기도했지만, 성도들에게도 기도를 간절하게 부탁하고 때로는 권면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기도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기도의 새로운 자세를 확립하고, 2025년은 기도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매 주일 ‘우리들이 놓치고 있었던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기도 없는 삶에 익숙해지셨습니까? 혹은 잘못된 기도에 익숙해지셨습니까? 아니면 오늘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교제 없는 기도에 익숙해지셨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답고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