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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3)_거룩하게 지키는 방법 (사 5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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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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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3)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 (사 58:13-14)


대한예수교장로회 예배모범

전 시간에 제가 겪은 간증 가운데 주일날 공부하지 않고 밤 12시에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나 안경점 하는 집사님이 주일날 안경점 문을 열지 않고 주일을 온전히 하루 교회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그 시대에 주일성수에 대하여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배웠던 내용을 따라서 저나 혹은 그 집사님이 결단을 하고 순종했었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주일에 대한 인식, 또는 사회 분위기나 제도 등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옛날처럼 그렇게 주일을 지키는 경우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 날 우리는 주일성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을 예배 모범이 있습니다. 제1장 제1항에서,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니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리 육신의 사업을 정돈하고,’ 언제? 토요일 날, 그래서 토요일이 준비일, 혹은 예비일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속히 준비하여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날을 거룩히 지킴에 구애가 없게 하라.” 즉 주일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제2항을 보면, “이날은 주일인즉,” ‘주일’은 ‘주의 날, 주님의 날’을 의미합니다.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 회집으로나 개인적으로 선행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위급한 일밖에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피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또 세 번째로는. “이날에는 가족이나 권속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 네 번째. “주일 아침에는 개인으로나 혹은 권속으로,” ‘권속’은 가족을 의미합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히 저희 목사가 그 봉직하는 가운데서 복 받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묵상함으로 공동 예배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준비하라.” 교회 오기 전에 개인적으로나 가족이 함께 기도하되 예배를 위해서, 또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제5항은 예배에 대해서, “개회 때부터 일심 단합함으로 예배 전부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한 시간에 일제히 회집함이 옳고,” 지각하지 말라는 말슴이죠. 그다음 “마지막 축복 기도할 때까지 특별한 연고 없이는 출입함이 옳지 않다.” 축도까지 이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엄숙한 태도로 공식 예배를 마친 후에는 이날 남은 시간은 기도하며 영적 수양서를 읽되 특별히 성경을 공부하며 묵상하며 성경 문답을 교수하며 종교상 담화하며 시편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를 것이오. 병자를 방문하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며 무식한 자를 가르치며 불신자에게 전도하며 경건하고 사랑하며 은혜로운 일을 행함이 옳다.”


주일성수 방법에 대한 시대적 변천

그런데 과거의 주일성수에 대한 가르침은 이 가르침에 구약 시대에 안식일 지키는 원리가 함께 합쳐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이사야서 58장 13절,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내 성일’은 ‘하나님의 날’을 가리킵니다.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또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시대의 세 가지 범죄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과 미워하시는 금식의 문제, 안식일의 문제, 정의 실현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 지키는 도리를 지키지 않다가 나라가 멸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지키는 도리를 주일성수에다가 접목을 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기독교 국가에서는 국가법이 되어 이 법을 위반하면 교회로부터 출교를 당하는 법까지 있었습니다. 이제 시민사회가 되면서, 즉 세속 국가가 등장하면서 이 문제들이 반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과거에는 주일을 율법적으로 세밀하게 규정하는 시대도 있었고 그런 시대에는 주일날을 어떻게 지켜라 하는 계명이 수없이 많이 나왔습니다. 정말 유대인들보다 더 엄격한 율법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에 대해 많은 부정적인 말들이 있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다

오늘날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일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날이란 것입니다. ‘주의 날’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완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킬 때 주일의 참된 의미를 알고 그 날을 소중하게 여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과 금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날에 해야 할 일들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날 해야 할 일들에 초점을 맞추면 금해야 할 일들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날의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예배와 성도의 교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참된 원리입니다. 왜냐하면 이날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후대 연구에 의하면 오순절도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이었다고 합니다. 주일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시작, 즉 창조의 첫날, 그 주간의 첫째 날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도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도 주일날 이루어졌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모두 주일날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상 주일을 지키는 원리는 시대마다 그 나라의 형편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러나 공통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그날에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주일을 예배하는 날, 크리스천 워십데이(Christuan Worship Day) 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날, 이렇게 그 개념을 명칭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이것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과거에 저는 주일날 학생들은 공부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공부 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어긴다고 할까요, 아니면 무시한다고 할까요?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일 큰 도전이 학생들이 중간고사 때문에, 또는 기말고사 때문에 교회 예배에 안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으ㅔ 제일 큰 도전이었고, 교육전도사 시절 교육부를 담당할 때에 제일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 도전은 국가 자격 시험 같은 것들이 다 주일날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주일날 학교가 비니까 학교를 이용해서 이런 시험들을 봤습니다. 그 시대에 교회에서 정부나 당국에 민원도 많이 내고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일날 이루어지는 이런 것들이 과거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토요일이 휴무일이 되어 학생들이 학교에 안 가게 되니까 학교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일날 이루어지는 일은 많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은 예배 날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야 한다

그러면 주일예배는 어디에서 드려야 할까요? 기본적으로는 본 교회입니다. 자기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자기 교회가 있는데 타 교회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서 본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정이 되면 카터 대통령처럼 전용 비행기를 타고 오면 되겠죠. 그럴 수 없는 분들은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미리 토요일에 교회를 알아보고 주일날 그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교회에는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적을 두고 있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때로는 이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일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드온 협회 일을 보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기드온 협회를 알리고 모금을 위해 타 교회 예배를 참석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교회 장로님이신데 한 달에 두, 세 번씩 타 교회에 가야 했습니다. 이분은 이것이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 해서 장로직을 일찍 은퇴를 했습니다.


성도의 교통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

왜 본 교회 예배 참석이 기본입니까? 성도의 교통 때문입니다. 타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 성도의 교통이 없습니다. 물론 그 교회 분들이 오셔서 말을 걸어오겠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그분들과 성도의 교통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 본 교회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는 교회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본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타 교회 가게 되면 성도의 교제가 없는 손님, 그냥 방문객일 뿐입니다. 방문객은 예배를 드릴 때 예배 순서에는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성도의 교제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교회를 순례하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한 교회를 가서 한 달 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이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여기에 노회의 적을 두고 있는 분들은 앞으로 우리 교회 예배에 오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이루어야 되는데 여러분들하고는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광고 이후에 제가 그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때 배운 것이 이것입니다. 교회는 한 예배, 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것이 교회를 한 몸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본 교회에서 예배드리라는 것이 율법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적 원리입니다. 자신이 적을 두고 있는 교회를 떠나 아무 곳이나 다니는 일은 엄하게 금해야 할 일입니다.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본 교회 성도들과 성도의 교통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루어 가는 것이 바로 주일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이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에 주일날 어떤 일을 하고 안 하고 하는 문제로 논쟁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하라 입니다. 주일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성도의 교통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세트입니다. 예배와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와 성도의 교제가 어디에서 이루어져야 할까요? 본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피치 못한 일로 외부에 나가 타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교회 순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본 교회 예배와 성도의 교제가 하나의 세트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랑 만나면 좋은데요?’ 친구와 그리스도의 몸은 다릅니다. 성도의 교제는 친구와 재미있는 것 하고는 성격이 다릅니다. 성도의 교제는 진리 나눔과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일들입니다. 그것이 주일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일은 무엇보다 무슨 날이어야 합니까? 예배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예배와 함께 무엇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성도의 교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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