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승리하신 그리스도(1)_믿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모습, 또는 감춰진 그리스도의 영광(시 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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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26

본문

승리하신 그리스도(1)

믿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모습, 또는 감춰진 그리스도의 영광(53:1-2)

 

 

전도자의 탄식

오늘 본문 이사야서 531절의 말씀은 전도자의 탄식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간 들, 누가 우리를 영접하겠으며, 우리가 복음을 증거한들 누가 이 말씀을 듣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참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점점 노령화되어 가고 젊은 세대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복음에 대하여 얼마나 적대적인 상황인지 모릅니다. 과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상당히 많은 열매를 맺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학생 선교가 뜨거운 결실을 맺었 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모두 피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는 복음 전파가 어떤 장벽으로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이사야 선지자가 직면한 시대 상황

본문 말씀을 보면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 선지자 또한 우리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큰 장벽을 대면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우리가 전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앞에서 전했던 모든 메시지들입니다. 그 모든 메시지들은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도 전혀 믿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기뻐하는 것처럼 했지만,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냥 겉으로만 말씀을 듣는 체했고, 실제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자리 잡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사야서 42:18절 이하에 보면,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누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을까요? 소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9절을 보면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하나님의 종이 맹인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보낸 사자는 귀머거리가 되어서 듣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보지도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메신저로 자처하는 현실을 반어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충성을 다짐하고 누구에게든지 자랑하는 그 사람이 맹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맹인이겠느냐?” 여호와의 종을 자처하는 사람이 맹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하고 이사야 선지자가 대면한 현실이 오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보다 더 안타깝고 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선포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절망적인 절벽을 향해 말씀하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그는 결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망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망과 구원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길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을 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여호와의 종의 모습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이사야서 42장의 여호와의 종의 모습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선지자의 메시지는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이방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영광스러운 새 시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저는 이사야서 40장부터 66장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많은 말씀은 믿지 않는 이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줄과 씨줄이 서로 한 번씩 한 번씩 얽히는 것처럼 구원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막혀 있음, 구원과 막혀 있음, 구원과 막혀 있음, 이것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지. 더구나 그들에게 전해진 여호와의 종,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종의 모습은 그들이 기대하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오늘도 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고 말씀하는데, ‘여호와의 팔우리가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호와의 종은 여호와의 팔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여호와의 종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선지자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며, 그리고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가 선포될 때 세상이 보이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자기들의 메시아를 영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이렇게 외치면서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 다른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메시아는 그들의 왕으로 그들이 기대하고 있던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메시아가 아니었고 그들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하고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미 이사야서 5213-15절에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그리스도의 성공,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하고 형통하고 영광스러워지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14). 그 모습이 전에는 다른 사람보다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키는 얼마나 되는지, 몸집은 얼마나 되는지, 얼굴은 얼마나 잘생겼는지 하는 이야기는 한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성경을 보다가 예수님에 대하여 그 외모가 어땠을지를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사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시다가 내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었느니라하고 말씀하시니까 바리새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오십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말하는구나.’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오십도 되지 않았는데라고 말하는 것에 착안해서, 예수님이 당시 나이가 한 30살 정도였는데 이 사람들은 오십 세로 말을 할 정도로 예수님의 외모가 동안이 아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셨을까요? 그 이유는 백성들의 죄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두고 너무 마음을 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실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에 대해 답을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외모가 사람들이 볼 때 인간적 기준으로는 그럴듯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멋진 외모나, 혹은 집안 배경을 가진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지만, 다윗의 자손 계보의 장자로 이어지면서 그 영광을 그대로 지니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다윗 왕가가 그친 지 500년이 넘었고, 5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다윗 왕의 계보는 흩어질 대로 흩어지고, 그 후손들은 영락하여 보잘것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를 따져 올라가도 그 가계에 대단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보기에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한동안 그곳에 머무시면서 후에 예수님을 따를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한 번은 나다나엘이 메시아를 만났다는 친구의 말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라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성품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믿는다

알고 보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인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자자가 직면한 일이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이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유럽은 이미 이런 일들을 일찍 경험 했고,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이런 일들을 경험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역사 전부는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현상이 대세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이와 같은 세태, 이 세상의 모습,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당연한 것을 예외적으로 생각할 만큼 얼마 전까지 우리는 복음이 은혜롭고 능력 있게 성공하는 모습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시대에 대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의 성공은 이 세대가 복음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이 말씀이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혼 속에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의 역할 때문이었을까요? 사람들의 마음이 이것을 받아들일 만큼 지금보다 더 온유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더 은혜롭고 강하게 역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본성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타락한 인생들은 똑같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모습도 동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동일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그쳤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화려함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영광으로 옷 입고 나타나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던 이유는 그분이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옷에는 금으로 장식한 임금의 옷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이분이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온갖 화려한 훈장을 온몸에 두르고 나타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전파되었을 때, 그분은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고, 가시에 긁힌 살이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전파되었을 때 그분은 십자가에 매어 달렸고, 못으로 양손과 발목이 십자가의 못 박혀 있는 비참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옆구리는 창에 찔려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화려했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의 영화로 빛났기 때문에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세상의 왕이라고 하면, 우리를 구원할 분이 세상의 대장군이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혹시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이라 부르지만, 그러나 그분은 금 면류관을 쓰신 분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고, 그 때문에 강제로 살을 찢겨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을 믿었습니다.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었습니다. 누가 믿었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믿었습니다.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그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세계에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오늘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면, ‘누가 믿었느냐?’ 은혜 받은 자가 믿으며,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시대에 다시 십자가의 복음이 흥왕케 되고, 이 일로 말미암아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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