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1)_부모님은 축복의 통로(창 2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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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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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1)

부모님은 축복의 통로(창 25:7-11)


부모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 제목으로 몇 회에 걸쳐서 성경적 가정과 그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자녀와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을 함께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부모님은 축복의 통로입니다’라는 제목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사회이든지 ‘부모를 공경하라’는 사상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종교이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런 동일한 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사상이나 종교와 같은 차원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부모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부모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주로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생각, 그리고 낳고 자라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한없는 사랑을 베풀고, 또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는 일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양주동 씨가 작사한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도 바로 이러한 사상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우리들이 다 인정하는 바고, 시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살아 있는 분명한 원리인 것입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니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가이 없어라’는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릴 때는 이런 노래가, 또 이런 말들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학생 시절에 저는 저 혼자 잘 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자기 혼자 잘 큰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희생하고 잘 돌봐주었기 때문에 잘 큰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먹지 못해도 자녀들 먹이는 일에 집중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아이가 깨어 있으면 같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늘 조마조마한 심정을 가지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저도 그때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잘난 맛에 제가 혼자 큰 줄 알았습니다. 정말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과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 제가 없었습니다. 저희의 존재 자체가 사실은 부모님에게서부터 근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적으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이 땅에 존재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우리의 존경을, 우리의 사랑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라는 동안에 많은 희생을 하지만 그 희생을 자녀들이 제대로 이해해 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부모들의 말 한마디에 삐지고,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부모를 원망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가 왜 그렇게 했는지를 생각하고 그 일이 내가 한없이 서운하게 생각해야 할 만한 일인가를 다시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이러한 원리 위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도리를 배웠기 때문에 이것이 더욱더 크고 놀라운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우리 부모님들에 대해서 더욱더 그런 사랑과 존경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축복의 근원이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의 생애 속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요약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닌 이삭으로 살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삭을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축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의 인생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물물을 중심으로 양을 치는데 자꾸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어 또 옮겨갔습니다. 언제나 대적들이 주변에 있고 그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을 피해서 간 곳에서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고, 피해서 가서 우물을 파면 다시 물이 나오고, 결국 이삭은 마침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 26:22). 그가 이렇게 고백하던 그 해에 하나님께서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마침내 가나안 땅 제일 남쪽 브엘세바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너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신지라”(창 26:24). 하나님은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배운 그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축복하십니다.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즉 이삭을 위하여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하여 축복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축복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무엇인가 주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이것이 부모님 때문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연로하신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앞으로도 연로하신 성도들 점점 점점 더 비중이 많아질 것이라 전망합니다. 그러나 연로하신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삶처럼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브엘세바’라는 땅의 이름은 이때의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명칭입니다. 맹세의 우물이라고 하는 의미인데 맹세가 바로 언약입니다. 즉 언약의 우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그 자손, 그리고 그 자손의 자손들을 축복하겠다라고 말씀하신 언약, 그 언약을 기억하는 명칭이 브엘세바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부모님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고,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를 배우는 이것이 자녀에게는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믿음의 어머니를 통해 성경을 배웠던 자녀의 노래

제가 최근에 찬송가 199장을 부르다가 문득 제가 그동안 이 찬송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을 보다 보니까 “나의 사랑하는 책에 비록 해어졌으나”라고 되어 있는데 이 ‘해어졌으나’를 ‘헤어졌으나’로 알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헤어졌고, 이제 어머니와 함께 했었던 성경책과 얽힌 추억들을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는 하나님께 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찬송은 ‘해어졌으나’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그 의미를 잘못 알고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를 여의고 남은 성경책, 아마 이미지는 아마 같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의미 자체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즉 다 낡고 다 닳았으나 라는 의미입니다. 낡고 닳아버린 성경책을 보고 이 성경책에 얽힌 어머니와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이 성경책을 가지고 자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고, 이제는 자기가 어머니와의 그 모든 기억들을 간직하고, 이 성경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기를 힘쓰고 있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은 나를 영원한 천국으로 이끌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찬송의 영어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생각했던 그 의미가 맞았습니다. There's a dear and precious Book, 사랑하는 귀한 책이 있다. Though it's worn and faded now, 지금은 다 낡고, 이렇게 달아버렸다. 그런데 이 성경책이 Which recalls those happy days so long ago; 아주 오래전 행복한 날들을 떠올리게 하는 거예요. When I stood at mother's knee, 그때 나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 서 있었고, With her hand upon my brow, 어머니는 그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셨고, And I heard her voice in gentle tones and low. 그러면서 어머니가 아주 부드럽고 나지막한 어조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On thy dear old tear stained leaves, 성경책을 넘기면 눈물로 얼룩진 자국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읽으며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나중에 보게 되면 이 사람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성경이 점점 더 달콤해진다고 노래합니다. Thou art sweeter day by day, as I walk the narrow way,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성경 말씀은 나를 그 밝고 영광스러운 그곳으로 인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2절은 어머니께 들은 성경 내용들을 노래합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 임금 다윗왕의 역사와 또 주의 선지 엘리야 바람 타고 하늘에,”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엘리야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탄의 시험으로부터, 즉 어머니는 사탄이 그의 많은 사악한 개교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경 책장마다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는 그 성경책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십자가와 피 흘려 돌아가신 일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she dried my flowing tears, 어머니가 내 눈물을 닦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사랑하신 바로 그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 저자도 그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눈물을 닦아주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나에게 입맞춤을 해 주셨으며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해서 행하신 것이란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tear stained leaves 눈물이 얼룩진 성경책, 이 성경책을 내가 지금도 몹시 사랑합니다.


부모님은 믿음의 근원이시다

여러분 저는 이 시를 노래했던 저자에 대해 무한한 부러움이 있습니다. 이 저자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믿음의 어머니를 통해 진실한 믿음을 전수 받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를 여의고 비록 어머니는 볼 수 없어도 어머님이 사용했던 성경책, 눈물로 얼룩진 이 성경을 여전히 자기도 읽으면서 주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이 저자가 참 부럽습니다. 그러나 부러워하고만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면 됩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면 됩니다. ‘아니,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여러분의 자녀의 자녀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후손들은 여러분에 대해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늦은 것이 아니닙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이 믿음으로 사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브라함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로마서에서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위하여라는 이 말은 이삭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우리의 자녀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때 모든 자녀들은 부모가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믿음의 삶으로 충성스럽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했는지 그 믿음의 삶을 공유하는 의로운 자리에 나아갈 것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복된 자리에 이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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