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기도하라(5)_영적 성장이 없는 기도에 익숙한 그리스도인 (벧전 2:2-3)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5-01-10본문
모든 일에 기도하라(5)
영적 성장이 없는 기도에 익숙한 그리스도인 (벧전 2:2-3)
칼빈이 가르치는 기도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기도 생활에 열정을 가지지 않고 기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가운데에서 기도의 필요성을 부인한다거나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 아무도 안 계실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회 역사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성경의 약속들이 엄연히 있음에도, 그리고 기도하라는 교훈이 있음에도 이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 법칙에 따라서 모든 일들이 이 법칙에 따라서 진행되게 하셨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빈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6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하나님을 항상 찾으며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소원과 열의를 우리 마음에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해, 즉 기도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겠다. 항상 하나님을 찾겠다는 불이 마음속에 불붙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섬기고 또 하나님을 끝까지 찾겠다는 불붙은 심정이 일어날까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부끄러운 욕망이나 소원이 우리 마음에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즉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고백하지 않는 고집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삶을 보호합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부끄러운 일들과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기도의 작용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실 때 진심으로 감사하며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죠. 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네 번째 이유는 우리가 구하던 것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으로 그의 인자하심을 더욱 열심히 묵상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네 번째는 내가 특별히 기도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기도한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랍게 역사하시는구나 하면서 앞으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더 열심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다섯 번째 이유는 기도로 얻었다고 인정하는 것들을 더욱 큰 기쁨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고 하는 것만큼 감격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사실이 우리의 마음에 더 큰 기쁨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여섯 번째 이유는 우리의 습관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통치하십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더욱더 굳게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칼빈이 가르치는 기도의 본질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0장 제목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며, 우리는 기도를 통해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은 “전능하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처음으로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가 고백한 이 신앙 고백, 우리의 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믿습니까? 하나님은 하시지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의 믿음을 기도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는 날마다 기도하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는 무익한 것일까요? 기도는 필요 없는 것일까요? 기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145편 18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길, 바로 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것이 믿음을 가진 성도의 간절한 소망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이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베드로전서 3장 12절 말씀을 보면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도다.” 그런데도 기도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런데도 기도 안 해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칼빈이 가르치는 기도의 원칙
칼빈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세 가지 원칙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첫 번째 기도의 원칙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도하는 이 자리에 임재하셨고 우리는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순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칼빈주의의 모토라고 많이 들었던 용어가 ‘코람데오’ 입니다.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라틴어입니다. 이 말은 칼빈주의에서 성도의 삶을 표현하는 표어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한다는 칼빈의 이 교훈에서 하나님은 기도의 순간에 초자연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즉 우리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교훈에서 칼빈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 임재하신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삶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것이 코람데오입니다. 그것이 기도이고, 그것이 예배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함부로 말씀드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자로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의 원리는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신이 하나님을 모시기에 얼마나 추한지를 깊이 깨닫고 느끼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겸손입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할 때 내가 무슨 마치 맡겨둔 것을 내달라고 하는 것처럼, 혹은 뻔뻔스럽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의와 자기 자랑으로 하나님께 구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겸손하게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부족한 것을 인정하면서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와 기도의 법칙들을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직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모습들은 영적 성숙에 이르는 모습들입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이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적 성장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며 기뻐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적 성장이 있을까요? 이런 것들을 예민하게 느끼고, 이것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사랑과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겨 살아가는 삶이 바로 기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 성장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방법
사도 베드로는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라고 말씀하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는 영적 성장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통곡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항상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기의 모습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즉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 일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기억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의 마음속에 자기가 과거에 했던 그 일, 이것을 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여 그와 같은 잘못을 했는데, 너희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다 잠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한시도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에 모두 도망갔고, 그나마 용기를 내어 따라갔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면서 도망쳐 나와야 했습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단지 우리가 부족한 것을 강청해서 하나님께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로되, 그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신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무슨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기도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없다면 우리의 영혼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도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에 대한 권면으로 끝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과 함께하고 매일 그 은혜를 누리면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