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1)_느헤미야가 발견한 시대 상황 (느 13:15-22)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5-01-17

본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1)

느헤미야가 발견한 시대 상황 (느 13:15-22)



주일성수에 대한 카터 대통령의 일화

지난 연말 미국 카터 전 대통령이 100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미 카터는 제가 청년 시절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미군을 철수한다 해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그는 1979년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차 문을 열어주던 한 장교가 카터 대통령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는 의전 관례상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였습니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 언론 기자들이 취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장교가 카터 대통령에게 “저도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카터 대통령이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차를 탔다는 거죠. 이분에게 굉장히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 성수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면서도 주일날이면 어디에 있든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본 교회 예배에서 드리고 주일 학교 교사의 일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제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서도 아직까지 이분이 하나님께 가졌던 믿음과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사랑하고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깊은 인상이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께 늘 기도합니다. 제가 목사니까 당연히 주일 성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일성수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이 그에게 주어졌고, 또 그의 삶에 주일을 지킬 수 있을 만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를 소망하는 것은 그 삶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는 평안과 힘을 공급해 달라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주일성수에 대한 서원과 하나님의 인도

저는 그 사실을 청년 시절에 알았습니다. 당시 저는 연탄아궁이가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한 번은 밤에 자다가 갑자기 ‘연탄 가스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비몽사몽간에 얼른 일어나서 방문과 창문을 모두 열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잠시 지난 후 정신이 좀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날 무슨 힘으로 일어나서 문을 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이제 저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잘못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날이 주일 새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전에 제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등부 교사가 되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하나님 제가 교사로서 결석하지 아니하고 이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께 서원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경험한 사람만 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주일을 위하여, 사명을 위하여 기도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목사가 되어서도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벌써 13년이 지나갔습니다마는 제가 설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했습니다마는 한 주도 주일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설암으로 입원을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가 주일날 예배 인도하러 왔습니다. 설교까지는 못하고 예배 사회를 봤습니다.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설암 부위가 암으로서는 정말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혀끝에 암이 있었으면 혀끝을 잘라내야 했고, 나중에 혀 복원 수술을 한다 해도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하고 주일은 커녕 목사직을 은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중등부 교사로 임명받은 그때 제가 교사의 사명을 결석하지 않고 감당하겠다고 기도드렸을 때 주님께서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서원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까요? 여러분의 삶에 여러 가지 환란과 어려운 뜻밖의 일들이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 주일 성수를 위해 서원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주일성수할 수 있는 삶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세요. ‘내가 주일 성수 하겠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서원을 해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주일성수 할 수 있는 삶으로 인도하나 인도하지 않나 한 번 시험을 해보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주일성수에 대한 도전

주일 성수에 대하여는 저에게 많은 도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 입시 재수할 때의 일입니다. 다음 주에 대학 입학 학력고사가 있었는데 저는 갑작스러운 절망에 빠졌습니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 시험을 보면 재수도 실패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 밤을 새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이 되니까 주일에 대한 염려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전까지는 주일 새벽부터 밤까지 주일을 지켰습니다. 새벽 기도, 대예배, 오후에는 학생회 예배, 그리고 저녁에는 저녁 예배로 주일의 삶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지금 한 주일 동안 밤을 새며 공부하는 데 주일 하루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은 교회에 가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주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겠노라 해놓고 주일을 빠지고 시험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본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대학을 떨어지더라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맞겠지요?” 기도한 후 저는 떨어지면 떨어진다고 각오하고 주일을 평소와 동일하게 지냈습니다. 저녁 9시 반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12시에 일어나 아침 8시까지 8시간 동안을 앉은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수학을 공부했는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목요일 날 시험을 봤는데 수학을 제가 다 풀었습니다. 재수에 성공을 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그날 밤에 밤새워 공부했던 수학, 제가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했었던 그 원리가 시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나 놀랐습니다. 여러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우연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한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주일 성수에 대해 경험이 있으십니까? 주일 성수를 다짐하고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 경험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2025년 우리의 경험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

오늘 2025년 1월 첫 주일 새롭게 시작되는 메시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입니다. 이 메시지는 목사로서 여러분을 책망하기 위해서 드리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호소예요. 이 시대를 보면서, 영적으로 능력을 상실한 교회와 무능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호소하는 것입니다. 2015년에 설문조사 하나가 있었는데 500명을 대상으로 주일을 지키고 있는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가? 물었습니다. 500명 중에서 29%만 매 주일 출석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35%는 빠지는 때도 종종 있다. 나머지는 자주 빠진다 였습니다. 이미 한국교회가 지켜왔던 주일 성수가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코로나가 3년 동안 덮쳤습니다. 아마 지금은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의 삶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변하면서 시대가 변했으므로 이러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목격한 상황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상황이 우리와 같은 상황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페르시아의 관리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말이 그들이 지금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의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에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아닥사스다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 얼굴에 근심이 많은데 도대체 네 근심이 무엇이냐?’ ‘왕이시여, 지금 저희 동족이 귀환해서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는데 그 삶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를 얼마나 아꼈던지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와서 보니 정말 그들의 삶이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고 제대로 손질을 못하고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새롭게 수축하고 성문까지 새로 달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말씀을 읽고, 제사장들이 자기 앞에 있는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고,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대성통곡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도 않았구나.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비참한 삶이 임하게 된 것이구나’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달 24일에 모든 백성들이 다 모여 언약 갱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헤미야가 보니 안식일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입니다. 15절 ,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서약을 한 것이 언제입니까?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삶을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다음 16절을 보면 이방인들도 여기에 가세를 했습니다.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이 현실을 보고 느헤미야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느헤미야는 붙잡힌 사람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성문을 닫아 걸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성문에 와서 열리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벽을 새로 수축하고 성문을 새로 달아 백성들의 삶을 평안케 한들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 일들을 가로막지 아니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 서약한 일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 거룩하게 하신 날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날을 정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날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 날을 우리의 생명처럼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 목회자로서 여러분을 책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데 우리가 이 복을 걷어차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워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로 결심을 해보십시오. 주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서원을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 서원을 받으시면 여러분은 주일날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 아닙니까? 느헤미야가 발견한 이 엄연한 현실을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 성수에 대하여 2025년 첫 주일 첫 예배에서 다시 한 번 각성하시고 마음에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주일날 주신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서원을 들으시면 여러분의 삶은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안식일에 복을 주어 거룩하게 하였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을 주어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