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4)_진리를 위한 투쟁 가운데 교회는 부흥했다(엡 6: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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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8-17본문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4)
진리를 위한 투쟁 가운데 교회는 부흥했다(엡 6:18-20)
사도의 기도 부탁
오늘 말씀은 사도가 마귀와의 투쟁에 대해 교훈하면서 성도들과 자신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기도는 마귀와의 투쟁에서 우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마귀를 물리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사역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현재 사도는 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20절을 보면 사도의 상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쇠사슬에 매여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다닐 때에도 항상 쇠사슬을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쇠사슬에 매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내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그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편한 삶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께 받은 사명, 그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의 결과 복음은 전 세계로 퍼져갔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렇게 사도 바울처럼 그가 걸어갔던 길을 통해 교회가 능력을 얻고 부흥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고난 가운데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마땅히 할 말을 한 메신저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하는 것과 그를 통해 진리를 흥왕케 하시고 교회를 부흥케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위한 투쟁
존 파이퍼 목사는 영적 거장 특강 시리즈 제4권 『Contending For Us All(우리의 모든 것을 위한 투쟁)』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란 우리가 모든 것이라고 여기는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겁하게 피하지 말라.” 우리의 모든 것, 즉 우리의 모든 것이 되는 진리의 위기가 찾아올 때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진리를 위한 논쟁은 교회 분열만 일으킬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진리를 위한 논쟁은 사람들에게 교회를 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것은 교회를 분열 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의 하나 됨을 방해하고 전도하는 데 방해만 된다는 것입니다. 논쟁은 교회의 생명력을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파이퍼 목사는 “교회의 역사는 논쟁의 시대다. 교회가 논쟁하는 시대에 생명과 능력의 시대가 많았다”고 하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논쟁이 없었다면 복음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교회도 없었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진리의 논쟁이 일어났을 때 교회가 그냥 겸손하여 아무 소리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면 교회의 진리는 오늘날처럼 선명하게 세워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교리가 바로 세워지는 역사였으며, 교리가 세워지는 과정은 논쟁의 과정을 통해서, 심지어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세워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확립되기까지는 10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0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교리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추방을 당하고, 망명을 가야했고, 깊은 산속으로 피하여 숨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삼위일체의 교리가 승리하면서 이 교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진리 논쟁을 통해 교회가 부흥했다
파이퍼 목사는 논쟁을 통해서 교회가 크게 건강해지고 부흥하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사례를 세 개를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종교 개혁입니다. 루터와 칼빈이 논쟁을 통해서 로마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성경적인 교리들을 바로 세워나가 개신교 기독교가 세워지게 되었고, 진리가 다시 빛을 바라게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사례로는 1차 대각성 시대에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레의 논쟁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존 웨슬레는 알미니안주의 신학사상으로 하나님의 예정을 부인하고, 또 구원 얻는 믿음에 인간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지 휫필드는 비록 웨슬레가 자기의 대선배가 되고 멘토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고 그들이 함께 이루었던 메소디스트(Methodist)는 둘로 분열하게 됩니다. 하나는 칼빈주의 메소디스트고 하나는 알미니안주의 메소디스트입니다. 그리고 알미니안주의 메소디스트는 후에 감리교 교단으로 발전하게 되고, 칼빈주의 메소디스트는 웨일즈 복음주의, 웨일즈 장로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세 번째 사례로 미국의 2차 대각성을 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2차 대각성의 주역은 찰스 피니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찰스 피니는 알미니우스주의 중에서도 극단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원죄를 부인하고 믿음이 순전히 인간의 결단인 것처럼 가르쳤습니다. 찰스 피니의 부흥의 불길은 엄청났습니다. 찰스 피니에 대해 아니라고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아니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사엘 네틀턴이나 라이몬 비치 같은 사람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대가 지나간 후에 그것이 옳았다고 하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논쟁 속에서 계속해서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파이퍼 목사는 이 세 개의 사례를 들면서 겸손이라는 명목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20세기 미국 교회의 진리 논쟁
20세기 미국 교회의 역사는 유럽에서 도전해 온 자유주의와의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자유주의 신학이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신학교를 점령하고 이것이 일반 사회에 점점 퍼져 나가던 때에 미국에서는 개혁주의 진영이 바로 이 자유주의에 대해서 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와 개혁주의의 투쟁에서 핵심 사항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류가 없는가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유주의는 성경은 인간의 글이며 많은 오류가 있어서 인간의 수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임의로 성경을 철저하게 해부했습니다. 그에 대해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류성에 근거하여 우리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7개의 근본 교리를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근본적인 교리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근본주의자라는 명칭을 비하하는 의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성경의 무오류성을 확신합니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경의 교훈들과 가르침들을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로잔 대회가 열렸을 때에 로잔 언약이 만들어지는데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을 선언합니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에 대한 투쟁
20세기 미국 교회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승리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세력들은 한때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가서는 성경의 영감을 믿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 이 논쟁이 굉장히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한때는 개혁주의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1925년을 기점으로 해서 1년 후에 갑작스럽게 무너지게 됩니다. 1925년에 원숭이 재판이라고 하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테네시 주에서 진화론은 가르칠 수 없다고 주법으로 정하는데 교사 한 사람이 이에 대해서 반발을 해서 재판을 하게 됩니다. 재판의 결론은 진화론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리고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라고 하는 딱지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1년 후에 장로교단의 모든 곳에서 개혁주의자들이 모두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상황이 변화되었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 있던 유수한 개혁주의 교수들이 다 쫓겨났습니다. 보스나 메이첸이나 반틸 같은 사람들이 다 쫓겨났습니다. 개혁주의는 완전히 패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쫓겨나온 사람들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작은 군소 신학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을 믿는 선교사들을 위한 새로운 독립 선교회를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독립 선교부입니다. 그때 우리 교회를 설립한 해밀턴 선교사도 독립선교부로 자기의 소속을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영감 교리를 포기하고 성경의 무오류성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에 일제 탄압 속에서 장로교 총회가 신사 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가결하던 현장에서 항의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 나가게 됩니다. 이후에 그는 조선 땅에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교회와 교단을 섬기다가 인생의 또 다른 사역을 위해 해방된 대한민국으로 다시 왔습니다. 1949년에 추방당했던 한국, 이제는 더 이상 일본 땅이 아닌 대한민국에 오셔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와 있던 선교사들과 몇 개월 동안 함께 사역하다가 독립해서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바로 우리 서대신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세우고 얼마 있다가 6.25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6.25가 진행되는 도중 미군 당국에 의해 해밀턴 선교사는 미국으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그 과정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분의 회고록을 보면 한국인 제자가 자기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달러를 입금하고 인출하는 통장을 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줬는데 이것이 외국환 관리법을 위반한 것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국환 관리법 위반 혐의로 당국의 수사를 받고 결국은 추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로서는 참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해밀턴 선교사는 추방을 당했지만 우리 교회는 6.25 전쟁의 와중에 피난민들과 전쟁 미망인들이 밀려들면서 갑작스럽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우리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교역자가 4명, 5명이나 연달아 계속 갈려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용문산 이단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용문산 이단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고, 이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용문산 쪽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 목사를 음해하고 문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결국 목사가 와서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바뀌고 바뀌고 바뀌고 바뀌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지켜주셔서 오늘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리 편에 설 수 있기 위해
여러분, 교회가 진리 위에 바로 세워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문제를 외면하고 그냥 쉬운 게 쉬운 거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 시대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매우 큰 진리의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이 문제들을 자세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분명히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리 문제에 대해 소양을 가져야 진리 전쟁에서 진리 편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이 되는 진리를 위하여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선명하게 할 것이고, 우리 교회를 더욱더 튼튼하게 세울 것이며 이 시대를 이겨나가는 능력이 되게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투쟁을 통해서 교회를 새롭게 하셨고, 성도들을 순결하게 하셨고, 그로 인하여 더욱더 부흥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주께 쓰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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