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6)_십자가,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롬 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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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11-06본문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6)
십자가,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롬 5:17-19)
톰 라이트의 주장
이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총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왔습니다. 그동안에 우리는 새 관점이라고 하는 톰 라이트의 주장을 여러 가지 면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톰 라이트의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종교개혁의 이신칭의의 사상에 대해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나 내용은 바꿔치기 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톰 라이트에 따르면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오해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루터가 율법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어서 율법의 행위를 행위 종교라고 해석했고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실패하고 절망밖에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었고,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실천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실천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는 법정적 선언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칭의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그것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하나님의 의이며, 이렇게 약속을 실천하신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싣재가 되어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이 의롭다 선언하시는 칭의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새 시대의 기점은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셔서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일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것은 부활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그의 주장의 문제점
톰 라이트의 주장을 언뜻 보면 기독교의 진리들을 다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는 결코 그의 주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능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그냥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부활을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부활로써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명되고 메시아이심을 증명했다고 말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주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참된 의미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근거가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굉장히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통령이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면할 때마다 온 나라가 들끓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즉 그 죄를 깨끗하게 씻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신다고 할 때는 조용할까요? 하나님이 그냥 말로 ‘죄를 용서하노라’ 하시면 사람들의 온갖 시비가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죗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법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기왕에 존재하던 모든 유신논증의 약점들을 지적을 하고 유신논증의 설 자리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유신논증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도덕적 논증이었습니다. 도덕적 논증은 이렇습니다. 세상을 보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모두 심판받는 것은 아니지요. 죄를 지었는데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사람도 많고, 죄를 지었는데 잘 사는 사람도 많고, 죄를 지었는데 자손들이 잘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 세상이 안고 있는 불합리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불합리들이 교정되지 않고 지나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도덕적일까요?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이 계셔서 이렇게 잘못된 것들을 바르게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반드시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신논증을 통해 도덕을 절대적인 가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독특성을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도덕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 용서에 적용되는 것은 도덕성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죄를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이 굉장히 아름다운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법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다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은 그냥 죄를 용서하신 분이 아닙니다. 죄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을 하셨고, 그 후에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비밀입니다. 대속이란 대신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무슨 값을 치르신 것입니까? 죗값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죗값을 대신 치르셨고, 그 사실에 근거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말로만 죄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진실은 죄를 심판하시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심판은 죄가 없는 분에게 행하시고, 용서는 죄인에게 행하신 것, 이것이 구원의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으로서 죗값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죄 없는 분이 대신 죗값을 치르심으로 죄인은 그 사실을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죄 용서를 못 받을까요? 보험 계약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험 계약을 하면 반드시 확인 작업을 합니다. 요새는 홈쇼핑에서도 보험 상품을 판매하지요. 그러면 반드시 해피콜이 오게 돼 있습니다. 약관을 읽어주고 동의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 녹음을 합니다. 약관에 동의했느냐? 나중에 이것이 보험금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에 보험설계사 분들이 ‘내가 계약서에 대신 사인할테니까 다음 달부터 보험금을 넣으세요’해서 보험금을 넣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험을 타려고 하는데 계약서에 누가 사인을 했느냐 따지더니 보험 금을 주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계약 조건이 좋아도 본인이 내용을 알고 그 내용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사인을 해야 한다. 이것이 계약의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효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대속이 우리에게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은 칭의의 근거
그런데 아무나 죗값을 대신 치른다고 하면 효력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죗값을 대신 치르는 자격을 가진 존재를 세우셨습니다. 그냥 죄인이 “내가 죗값을 대신 치를게” 하면 효력이 없습니다. 그는 자격이 안 됩니다. 그는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하여 대신 죗값을 치를 수 없습니다. 자기도 파산했는데 누구를 위하여 무슨 보증을 선다는 말입니까? 보증을 서려면 뭔가 가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신 분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경녀 마리아에게 나시는 것이었습니다.그리하여 무죄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는 그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옮겨가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죄인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옮겨가야 합니다. 그래야 죗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인의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바로 죄의 전가입니다. 죄의 전가를 통해 무죄하신 분이 자기의 죄가 아니라 남의 죄를 자기의 죄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의 의로움이 죄를 용서받는 사람의 것으로 옮겨집니다. 이것이 의의 전가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향하여 ‘죄를 용서하노라 너는 이제부터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다’라고 말할 때 이것이 바로 칭의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가 옮겨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옮겨오는 전가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냥 말로만 죄인을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죄는 분명히 심판하시고 죄인에게는 의를 더하시는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일어난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셨고,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인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타난 이 시대는 새로운 시작으로서, 이제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일을 행하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는 사라지고 단지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지 부활을 말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십자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냥 부활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는 그의 구원론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는 세상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사명을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사명을 감당치 못하여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이 사명을 감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즉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다고 합니다. 그럴 때만 죄에 대하여 살짝 언급합니다.
진리를 바르게 분별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메시아는 단지 이스라엘의 대표자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하나님에게, 그리하여 중간에서 중계하시고 보증하시는 역할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친히 대속의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벌어진 간격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화목 제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ㅇ;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속죄의 제물이면서 화목 제물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속죄란 죗값을 치르는 것이고, 화목은 죗값을 치러 원수 되었던 관계가 회복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런데 톰 라이트는 이 십자가를 제거해버리는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톰 라이트가 기독교의 모든 용어들을 그의 주장 속에 담고 있지만, 그가 그의 주장을 펼쳐 나갈 때 무엇이 빠져 있으며 무엇이 왜곡되어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주장은 방대한 자료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에게 할 수 있는 대로 이 내용을 잘 설명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선포딘 메시지들을 다시 한 번 들으면서 이 내용들을 한번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메시지들은 설교 요약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설교 요약을 참조하면서 이 내용을 잘 정리하시는 기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무슨 내용인지 일목요연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주장들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잘못된 주장들이 우리 시대를 바꿔놓는 비극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인도하는 삶이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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