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2)_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살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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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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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2)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살전 2:13)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오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모습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기뻐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서 아주 탁월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13절 전반절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사도 바울이 늘 감사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데살로니가에서 사도 바울이 사역한 기간은 짧았습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입니다. 세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간계로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긴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연약한 교회가 환란 가운데 그 믿음이 더욱더 굳세어져서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아가야의, 그리고 저 아래 고린도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크게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울과 짧은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믿음은 아름답고 풍성했고 강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환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환란 가운데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고, 믿음이 더욱더 강력해지고, 사랑으로 성도의 교제를 이루면서 능력 있는 교회를 이루어 갔습니다.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바울 개인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사람들의 믿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했습니다.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역사한다’는 말은 헬라어로는 에네르게오말입니다. 에네르게오는 ‘활동한다, 일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심히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전 존재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믿는 자에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오래전 일입니다마는 제가 말씀 사역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말씀 사역은 힘이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보잘 것 없나요?” 말씀 사역에 전념하겠다 했지만 막상 말씀의 세계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제가 붙들고 기도했던 말씀이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원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그런데 주님, 저는 왜 이렇게 안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습니까? 제가 틀렸습니까?” 누가 틀린 것입니까? 저는이 말씀을 붙들고 몇 년 동안을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서대신 교회에 와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문제를 붙들고 더 연구하고 더 공부하고 더 매진하고 노력했습니다. 왜일까요? 저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원동력이 있다고 했는데 저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 앞에 기도하고 그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연구하고 공부하고 매진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이 몇 년 동안 쌓이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서대신교회에 보내실 때에는 그 쌓인 것들이 나타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전 존재에 걸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라는 것은 우리의 인간 전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격체, 아니 우리의 존재 전체에 걸쳐서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전 존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의 생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정신세계에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본문의 믿는 자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했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바로 이 믿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죄악성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전체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고 인생을 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가치에 대한 나의 판단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삶이 변화되는 자리에 나아가게 됩니다. 삶의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될까요? 우리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되고,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신의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십자가의 은혜 앞에 굴복하게 되고,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있다는 깨달음이 그의 마음을 주장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관과 그의 가치관이 통째로 변화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과 그의 마음과 그의 삶 속에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하나님의 말씀의 활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계속되는 말씀이 역사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짐승의 표 666

저에게는 요한계시록을 사랑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요한계시록을 읽고 읽고 공부하면서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 666표, 즉 짐승의 표였습니다. 배교자들이 오른손과 이마에 받는 666표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과거에 미국에서 666표를 가지고 종말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책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번역이 되었는데 제가 청년 시절에 읽었던 책 가운데는 ‘666표는 바코드다’라고 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바코드에는 제일 앞에 두 줄이 있고요. 끝에 두 줄이 있고, 가운데 두 줄이 있는데 이 줄이 6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666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코드를 가지고 매매하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고 배교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바코드를 볼 때마다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고 다니는 버스 가운데 666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666번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666번 버스를 타다가는 무슨 일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666번을 안타고 567번 버스를 탔습니다. 666번 버스가 오면 보내고, 또 오면 보내곤 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삶이 정상적인 삶일까요? 저는 그야말로 이상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르고 제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을 하게 되면서 드디어 666이 무엇인지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하게 됐습니다. 666표를 이마와 오른손에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코드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666표를 항상 우리 몸에서 찾습니다. 왜? 이마와 오른손에 받는다고 했으니까. 최근에는 몸에 심는 베리 칩까지 등장했습니다. 개나 고양이에게 칩을 심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칩을 심는 것인데 몸에 칩을 심으면 배교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신세계와 삶에 일어나는 변화

제가 성경을 저 혼자의 능력으로 읽고 해석하게 되면서 이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어느 날 저에세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짐승의 피를 이마에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가? 그의 정신세계가 변한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상징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마는 정신세계입니다. 표를 이마에 받는다는 말은 그의 정신세계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배교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정신세계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마에 무슨 작대기 하나 그었다고 배교가 되는 것일까요? 말도 안 됩니다. 이마에 무슨 밴드라도 하나 붙이면 배교일까요? 아닙니다. 무엇이 변해야 배교일까요? 정신세계가 변해야 힙니다. 즉 믿음의 내용이 변해야 하고, 믿음의 내용에 대한 그의 신뢰가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른손은 무엇이냐 하면 삶의 활동입니다. 즉 오른손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66표를 이마와 오른손에 받는다는 정신세계와 삶에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정신세계와 삶이 짐승의 원리, 사탄의 원리에 정복당하면 그것이 바로 배교인 것입니다. 어디 가서 이마에 바코드를 붙인 사람의 얼굴이 그 책의 표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 바코드를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또 오른 손목에다 바코드를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일인 줄로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믿음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믿음은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 그러면 가슴을 가리키면서 ‘내 마음이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영어에서 마음은 어디일까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은 머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믿음도 머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믿음은 우리의 정신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변했다는 것은 정신세계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직 안 들어갔다는 것은 정신세계가 말씀의 원리로 새롭게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한다면 가장 먼저 어디에서 역사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서 활동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정신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를 사랑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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