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4)_하나님의 백성의 단절과 계속(벧전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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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10-23본문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4)
하나님의 백성의 단절과 계속(벧전 2:9-10)
이방인을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하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백성의 단절과 계속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나라 백성인가? 또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시내산 언약이 떠오릅니다.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시내산 언약은 출애굽기 19장에 나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5-6). 여기 6절에 나오는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를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지금 사도 베드로는 ‘너희에게’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너희”는 누구일까요? 본문의 너희는 베드로전서의 수신인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면 베드로전서의 수신인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여기 흩어진 나그네는 언뜻 생각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0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즉 흩어진 나그네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방인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시내산 언약의 내용을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피상적으로 보면 톰 라이트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메시아이며 기독교는 갱신된 유대교다.”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과 같은 동일한 지위를 얻는다는 의미이지요. 시내산 언약은 원래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내 소유, 내 백성, 내 나라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바로 율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 즉 시내산 언약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원래의 백성은 버림을 받다
그러면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나오는 이 흩어진 나그네들은 어떻게 성도,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 수신인이 유대인이라면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자손, 야곱의 자손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런 말들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런 말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유대인들이 자부하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 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이방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유대인과 차별이 없다는 사실은 로마서나 에베소서에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에서는 흑암의 백성이었던 이방인들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셔서 그들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로 확장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에게 안 좋은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 마음을 짓누르는 마음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 대한 것입니다.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회복될 수 있다면 자기가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진다고 해도 소망하는 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원감람나무 가지가 잘리고 돌감람나무 가지가 접붙임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으나 그들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 가운데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유대인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고 버렸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4절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여기 사람은 유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에게는 버리는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누가 예수께 나아갔습니까? 흩어진 나그네, 이방인들이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7절). 그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넘어지나니,” 유대인이 넘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그렇지만 장차 하나님의 계획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의 이스라엘로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제는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하나의 백성만 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 된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10절의 말씀처럼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현재 이방인의 상태입니다. 그러면 현재 유대인의 상태는 무엇입니까? 전에는 백성이더니 이제는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하나님의 백성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도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 백성입니다. 즉 현재의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요? 유대인도 없고 이방인도 없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믿는 자만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면서 시내산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목적은 이방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신약 교회가 이루고 있는 상태, 즉 유대인도 없고 이방인도 없고 오직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믿는 자만 있는 이 상태를 아브라함의 언약 속에 이미 담아 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손이 많은 것에 마음을 집중한 것이 아니라 한 아들에게 마음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한 아들을 향한 그의 집착,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백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한 아들만 소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백성, 많은 민족도 한 아들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아들 이삭으로부터 출발한 야곱의 12아들은 12지파를 이루고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이 없을 때에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아닙니다. 율법이 주어지고 율법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웠을 때 이것은 하나님 나라 언약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사랑과 율법의 진정한 순종이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이라는 언약의 조건이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버림을 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진정으로 버림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집니다.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믿음의 백성이 되는 길이 유대인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 영광스러운 일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연속성과 단절성
톰 라이트는 연속성에 특별히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버림받았다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강조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지나가듯 말할 뿐입니다. 그는 언제나 회복에 대해 집중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이 회복된 유대 왕국에 편입되는데 회복된 유대 왕국은 지상의 나라가 아닌 의미로서의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유대인의 왕국은 지상에 성취된 것이 아니라 의미로서 성취되었다. 그리고 의미로 성취된 하나님의 나라에 이방인들이 백성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의미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갱신된 유대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단절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단절 때문에 톰 라이트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유대교일 수가 없으며, 유대인들은 그냥 유대인이라는 신분만으로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없는것일까요? 유대인의 신분만으로는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신분으로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서 하나님의 백성 되는 원리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성령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의 사역이 우리의 구원에도, 하나님 나라 백성됨에도 결정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하나님 나라 백성됨이 일어나는 시대, 이 시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새로운 시대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유대인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새로운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내부에 들어가 따져보면 결국은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오직 성령의 거룩하심을 받은 사람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뿌리심을 받은 사람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로 이루어졌던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단절되었고 새로운 백성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됨의 의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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