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5)_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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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10-30본문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5)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요 3:1-8)
하나님의 경륜의 연속성과 단절성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연속성과 단절성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유대교와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 같으며 어떤 면에서 다른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기독교는 유대교의 계속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단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을 했더라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않고 현재 신약 교회는 유대교의 연장이 되었을까요? 최근 톰 라이트라는 새 관점 학자의 책을 읽어보니 그는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갱신된 유대교다.” 마치 기독교는 유대교의 연장인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중 대다수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메시아인 것이 틀림없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정하신 모든 일들이 성취가 되었고, 이방인들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일이 시작이 되는 새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의미적으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톰 라이트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1세기 유대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그 변화를 알아야 연속성과 단절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간 목표를 정하시고 정해 놓으신 시대마다 필요한 계시와 사역을 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 시대의 계시와 사역은 연속성과 단절성을 가지면서 최종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
하나님에게는 새 시대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모든 계시를 완성하는 새로운 계획이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시는 계획이었고, 또 이 새로운 백성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또 요한복음 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육신 사건의 계시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은 창조주로서 만물은 그가 없이는 지은 바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은 빛으로서 이 땅에 비취었습니다. 빛은 자기 백성 가운데 오셨지만 자기 백성은 빛을 피했습니다. 빛의 백성이 빛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빛을 영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들은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즉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바로 이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밤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이 말씀은 굉장히 뜬금없는 대답처럼 보입니다. 지금 본문의 대화는 속기록이 아니라 요약. 즉 대화의 개요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빠지기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줄 우리가 아나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면 지금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항상 이런 관행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을 볼 수 없느냐? 이유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니라.” 즉 “너희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이유는 너희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태어나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지 못합니까?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가 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까?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거듭나야’에서 ‘거듭’이라고 하는 말이 문제가 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는 ‘아노쎈’인데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시’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니고데모는 ‘아노쎈’을 ‘다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위에서부터’였습니다. “사람이 위에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을 5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 원리를 알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난, 즉 위에서부터 태어난 탄생의 특징 때문입니다.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즉 바람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성령으로 태어남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7절,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태어남으로 받아들였던 니고데모는 이 탄생의 신비한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태어남을 육신의 태어남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육신의 탄생에만 한정 짓고 그 의미에 갇혀서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노쎈’은 ‘다시 태어난다’가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난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남, 이것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새 시대의 하나님 나라 백성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시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새 시대의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인정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새롭게 낳으신, 즉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에 들어간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즉 성령으로 탄생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었고, 성령으로 탄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시대
조직신학에서는 중생을 거듭남, 혹은 새로남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생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의 말씀을 보면 단지 중생이라고 하는 개인적인 구원 사건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유대인으로부터 신약 교회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변화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데 그것은 우리가 조직신학에서는 중생이라고 부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보면 성령으로 태어난 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이 새 생명의 원리로 그리스도인의 속에 임하시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 생명의 원리로 탄생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고, 이 새로운 백성들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원리가 시행되는 새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했다고 해서 저절로 유대인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
마태복음 16장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신앙 고백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훌륭한 고백입니까? 그러나 그 고백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백하는 자 속에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새 생명의 탄생이 있어야 합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우리 속에 탄생하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메시아, 구주라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성령이 행하신 일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시면서 언제나 새 생명의 원리로 역사하셔서 우리는 새로운 백성으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새 시대,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물로 세례를 주던 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오시는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메시아는 성령으로 역사하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베푸시는 성령 세례로 새 시대, 새로운 존재, 새로운 탄생,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주의 기독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강하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한 가지만 알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사도 바울이 강력하게 논증하는 것은 성령 받음이었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느냐?”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만 있는 새로운 나라
새 시대 신약 교회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부으심으로, 즉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일을 통하여 성령이 한량없이 임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생명의 원리가 싹튼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변화된 새 마음으로 새 삶을 살게 되면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도 이 원리를 따라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메시아로 영접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 속에 성령이 역사해야 합니다. 이방인 된 우리에게와 동일하게, 성령이 유대인에게도 임하고 성령께서 그의 영혼에 좌정하시고 생명의 원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이며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면 그만일까요? 그들 속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탄생, 성령으로 난 일이 그들의 비밀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을 만들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그 새로운 백성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 속에는 이방인도 있지만 유대인도 있되 차별이 없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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