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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8)_ 교회를 교회되게 하라(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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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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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8)

교회를 교회되게 하라(엡 5:15-21)


시대를 통찰하고 기회를 사라

지금 우리는 이 시대를 보면서 시대가 점점 악해진다고 하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악해진다고 하는 이야기는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 언제나 선포되었던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서도 사도 바울은 “때가 악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악했던 이 시대를 가리켜 이 세대라고 불렀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 “이 세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다른 시대와는 매우 다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런 시대에 복음을 전하고, 이런 시대에 교회를 세워 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 시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수록 우리는 점점 용기를 상실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른 방도로는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발견한 것은 교회가 교회 되는 것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자기 시대를 살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그가 자기 시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지혜롭게 대책을 세우는데 그 방법은 세월을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세월을 아끼라”에 작은 숫자 2)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표시는 난외주를 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 본문 밑에 있는 난하주를 보면 “2) 헬, 기회를 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의 문자적 의미는 “기회를 사라” 의미라는 것입니다. “세월”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카이로스” 입니다. “카이로스”는 ‘기회,’ 혹은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즉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순간,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잘 살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회를 사라”에서 “사라”는 KJV 영어성경에서 redeem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Redeem은 “구원하다, 구속하다” 입니다. 즉 시간, 세월 혹은 기회를 사는데 대가를 치르고, 희생을 하여, 그것을 구원하는 것처럼 사라는 것입니다  Redeem은 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특징을 알고 이 세대를 분별하였다면 세월을 아까라, 즉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순간을 아낌없이 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보고 그 기회를 가장 좋은 때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광스러운 때로 만들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시대를 보는 사람은 시대만 보면 안 됩니다. 시대와 더불어 하나님에게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에 두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어떻게 사야 할까요?


성령충만하라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무엇일까요? 사도는 성령 충만을 술 취하는 것과 연결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은 인간의 뇌에 작용하여 인간을 무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인간을 술의 노예로 만듭니다. 술에 인 박히게 되면 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집안 식구들을 괴롭게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식구들도 망하는 대로 끌고 갑니다. 집안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으면 온 가족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자녀들은 미래를 꿈꾸지 않고 현실의 삶을 포기합니다. 이와 같이 술 취하는 것은 술에 매인 삶을 이야기합니다. 술에 끌려 다니는 삶을 의미합니다. 술 때문에 망하는 삶을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은 이것과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고, 그 진리가 우리의 마음에 역사할 수 있도록 항상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령 충만은 그 성령의 역사,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십니다. 진리의 깨달음이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합니다. 성령께서 진리로 역사할 때 진리는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고, 사랑을 주고, 감격을 주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합니다. 그 소원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진리를 듣고 진리를 깨닫고 진리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마음껏 행하십니다. 성령충만할 때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께서 진리의 깨달음으로 우리를 주의 뜻 가운데로 마음껏 인도하시며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 자신을 내어놓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점점 더 크게 역사하십니다. 충만하고, 충만하고 더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보라

성령의 역사를 그치게 하는 방법은 불순종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깨달음과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소망과 소원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뒤로 물러나고 거역할수록 성령 충만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 충만, 순종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삶 속에는 다양한 지도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설교 중에 성도들을 지도합니다. 예배 중 광고도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자기의 생각으로 이 지도레 대해 할 건 하고 안 할 건 안 하는, 즉 그 지도하는 것들을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가 재단해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 출석을 가르칩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으로 예배에 출석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기준은 자기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자기의 삶을 살아 간다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성령 충만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순종의 삶을 살아보십시오. 힘들어도 순종의 삶을 살아보세요. 몸이 아파도 순종의 삶을 살아보세요. 바빠도 순종의 삶을 살아보세요. 여러분이 정해 놓은 선을 넘어보세요. 한 번 그 선을 넘어보면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 충만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선을 넘어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있는 장벽을 넘어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장벽을 넘어보세요. 여러분이 대고 있던 많은 핑계들, 여러분이 볼 때는 핑계가 아니라 합당한 사유인데, 그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유들을 한번 굴복해 보세요. 성령 충만의 순간이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성령의 역사 속에 살아가는 삶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장벽들, 내가 이야기하는 합리적 사유들, 이런 것들을 극복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이겨보십시오. 주님의 뜻은 이 모든 상황을 넘어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한번, 아니 깨닫지 않아도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시험해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예배자가 되라

더 나아가서 사도는 영광스러운 예배자가 될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19절). 이 말씀은 진리가 마음에 역사하여 그 속에서 올라오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망이 찬송으로 올라오는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마음속에서 진리의 깨달음이 있고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소망이 일어납니다. 사도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망이 찬양으로 솟아나는 참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예배하는 기관입니다. 때가 악할수록 교회는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영광스러운 예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영광스러운 예배 경험이 있는가? 저에게는 내년도 목회 계획에 대해 기도하면서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자료를 찾고 하는 가운데 마음속에서 막 솟아나는 소망이 있습니다. 내년에 우리 교회의 목표는 영광스러운 예배다 하는 생각이 막 솟아 올라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날의 참된 정신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예배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일 주일 중 하루를 하루 종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주일 성수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지겹고 힘든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영광스러운 예배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리의 선포와 진리의 교제와,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예배로 연결됩니다. 즉 진리의 선포와 교제와 찬양, 이 모두가 어우러진 하나의 예배,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예배 경험이 성도들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진리의 선포와 진리의 교제와 영광스러운 찬양이 성도들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진리의 선포와 교제와 찬양이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예배의 요소들이 성도들에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예배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예배를 소망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가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될 때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교회로서 악한 때를 이겨나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교회 되어야 이길 수 있다

교회가 교회 되는 길 이 외에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교회가 다른 것이 되기를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다른 탈을 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엔터테인먼트, 예능 산업을 마스크로 써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연구해서 그 취향을 탈로 만들어 쓰고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는 탈을 쓰는 것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입어야 될 옷은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교회 되어야 이 시대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가 악해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세대가 아무리, 아무리 완고해도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에게서 먼저 역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먼저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과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진리의 선포와 진리의 교제와 영광스러운 찬양이 있는 영광스러운 예배가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영광스러운 예배가 우리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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