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2)_구속사와 하나님의 나라(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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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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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2)

구속사와 하나님의 나라(시 100:1-5)



예배의 참된 자세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스러운 예배에 대한 시입니다. 이 시편 100편은 영국 교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입례송으로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 예배 장면을 보면 성직자들이 앞에 서고 그 뒤를 왕과 왕족들이 따라 회중석 가운데 통로로 들어오는데 그때 부르는 찬송이 바로 시편 100편입니다. 저는 시편 100편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모습이 참 장엄하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편 100편에는 예배의 감정, 혹은 정서, 혹은 예배에 임하는 자세들이 등장합니다. 예배의 기본적인 정서는 기쁨입니다. 1절,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절,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하나님을 섬길 때 섬김의 마음은 기쁨이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 찬양의 마음도 기쁨입니다. 즉 예배의 자세는 기쁨과 즐거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올 때 우리의 마음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날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이 모든 마음을 뒤로 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또 4절 말씀을 보면 “그에게 감사하며” 라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말씀에서 중요한 말이 3개 등장합니다: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 하나님께 경배할 때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든지, 그 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상당히 무겁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감정 같은 것들을 앞세우고 께 표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상황을 하나님께 대놓고 들이대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하나님께 들이대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뒤로 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의 자세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 어디 감사한 일들만 있겠습니까? 우리는 더 많은 날과 많은 시간을 근심과 걱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올 때는 이런 것들을 다 뒤로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들이 어떤 일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내 산 언약을 담은 노래

본문 말씀은 예배의 참된 정신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3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새기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라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시며, 왕이시며,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유의해서 보아야 할 귀절은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출애굽기 19장 5절과 6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여기에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그리고 그 백성이라고 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의 말씀은 시내산 언약으로서 시내산 언약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내 산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시는 것이 바로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의 본질입니다. “내 소유”는 왕과 그의 나라, 백성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시내 산 언약은 하나님 나라 언약

우리는 왕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합니다. 아마 우리나라가 왕국이었다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왕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라고 하는 말씀이 성경의 중요한 사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에서 “소유”는 왕으로서 나라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은 나라를 소유합니다. 나라가 왕의 소유이기 때문에 나라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즉 나라를 상속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라를 잘라서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 자체가 왕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소유”라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면 왕이 나라를 소유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과 맺은 하나님 나라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이 언약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세계 만민에게 보여주는 모델 하우스 국가로 삼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게 되면 모델 하우스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 건설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델 하우스에 가서 아파트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파트의 인테리어는 어떻게 되는지, 그곳에 들어가는 각종 자재들은 무엇을 사용하는지, 주방은 어떤 식으로 되는지 등등 모두 그대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입주하게 되면 모델 하우스에서 본 대로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은 바로 그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모델 하우스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종말에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서 미리 보여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나님의 나라 모델 계약이 바로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이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델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나라는 따로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의 실패는 본래 하나님의 나라가 따로 있으며, 이스라엘 왕국은 모델하우스다 국가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유대인의 왕국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아는 유대 왕국을 회복할 왕이라고 믿었습니다. 메시아는 이방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오직 유대인만의 메시아이며, 메시아가 세울 유대인의 왕국은 이방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유대인만의 왕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의 나라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유대인만의 왕국이라고 하는 사실을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3절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에서 “우리”는 누구일까요?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에서 “우리”는 일단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1절 말씀을 찬양하며 온 땅을 향해 경배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온 땅이여.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온 땅이여,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시요.” “온 땅이여,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저는 이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3절에 나오는 “우리”를 유대인만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온 땅”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존 녹스는 칼빈의 제네바 시편을 바탕으로 영어 시편 찬송을 예배 찬송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온 땅”을 “All people That On Earth Do Dwell”로 번역했습니다. “온 땅”을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로 해석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유대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온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선택의 목적은 세계 만민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 1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너와 내 자손, 즉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하나님께 받은 그 복으로 또 누가 복을 받습니까? 만민이 복을 받습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축복은 그와 그 자손이라고 하는 혈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민을 향한 것이 아브라함의 언약, 아브라함의 축복의 목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내 산 언약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지만,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지만 그 목적은 세계 만민이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세계가 모두 다 내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세계가 다 내 나라다. 그런데 그중에서 너희를 나의 것으로, 내 소유로”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온 세계 모든 민족의 왕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만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우리의 왕이시다

저는 성탄절이 올 때마다 찬송을 부를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라고 노래할 때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왕이고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유대인만의 왕이시라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노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만 되신다면 우리는 곁다리로 유대인들 곁에 붙어 “예수님, 우리 왕이 되어주세요”라고 하는 상황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유대인의 왕이 되셨는데 그것은 유대인만을 위함이 아니라, 유대인을 선택하셔서 모든 민족에게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택에는 항상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때나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 때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만민입니다. 세계 만민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대 유대인들에게 내가 메시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대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는 유대인만을 위한, 유대인만의 나라를 이룰, 유대인의 메시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 즉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의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델하우스를 운영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유대인의 왕국은 기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기간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인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고백하고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왜 유대인의 왕이 아니신가 하는 이유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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