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기쁨으로 순종하라(3)_순종할 때 받는 복(신 28: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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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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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순종하라(3)

순종할 때 받는 복(신 28:15-24)


신 28장은 순종과 저주의 장 

우리가 지난주에 생각했던 신명기서 28장은 소위 축복장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여기에 축복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 68절에 이르는 이 길고 긴 장에서 축복에 대한 진술은 14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과 저주에 대하여는 54절이나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과연 신명기서 28장을 축복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축복은 14절밖에 안 되고 나머지 68절까지는 저주에 대한 말씀으로 시종일관 진행되고 있는 데 도대체 신명기서 28장은 축복의 장입니까? 저주의 장입니까? 신 28:15 말씀을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그리고 “이 모든 저주”가 16절부터 등장하고 있습니다.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신 28:2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라 정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이 역전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뱀을 저주하시는 장면에서 저주의 내용들은 원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가령 아담이 땀을 흘려 땅에서 소산을 거두어야 하는데 이것은 노동입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인간에게 노동이란 참으로 신성한 것이며, 복된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마음도 성장하고, 정신세계도 발전하고, 삶과 육체가 건강하게 됩니다. 또한 이 세상도 점점 더 아름답게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땅을 정복하는 방법은 노동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노동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노동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노동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으로 주셨던 노동이 인간이 범죄한 순간 저주의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자에게 임한 출산의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산은 사실 축복이었습니다. 출산의 기쁨, 출산의 영광,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을 때 복이 변하여 저주가 되었습니다. 신 28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복을 받을 때에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데,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을 때에는 들어가도 터지고 나가도 엎어집니다. 동일한 것들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유전하는가?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신 28:25 이하의 말씀은 실상은 이스라엘 국가 역사 속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이 저주의 말씀들이 그대로 실현되게 하셨을까요? 우리에게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무서운 결과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순종하는 자는 언약을 지키는 자요, 언약의 백성으로서 약속하신 언약의 복을 받을 것이지만, 불순종하는 자는 언약의 백성에서 끊어지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비참한 자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입니다. 한때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했었던 주장이 있습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 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해 듣고 많이 두려워했습니다. 옛말에 “집안에 내력이 있다더라”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 가계 흐르는 저주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쉽게 다가오는 교훈이었습니다. 신 28장은 바로 이와 같은 저주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 28장은 순종하여 받는 언약의 복에 대하여 가르치되, 순종하지 않아 언약의 백성에서 끊어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귀신적 세계관에서 잘못된 유추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무엇인가? 이 주장이 힘을 얻고 전파되는 데에는 미국 풀러 신학교 피터 와그너 교수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선교사 출신입니다. 이분이 선교사 일을 마치고 풀러 신학교에서 교수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선교지에서 겪었던 일들이 그의 학문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다녔던 선교지는 미신이 세계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역들이었습니다. 그는 귀신적 세계관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귀신을 물리쳐야 복음이 전파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물리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의 성경적 근거는 출 20:5-6이라고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 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에서 진정 “삼사 대까지”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한 말씀일까요? 할아버지가 잘못했는데 이 잘못이 손자, 증손자까지 저주로 이어진다는 말씀일까요? 그래서 이것을 끊어야 산다는 말씀일까요?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삼사 대까지”는 한 100년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말은 몇 대까지라고 되어 있습니까? “천 대까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3, 4대와 1,000대를 비교하면 비교가 될까요? 무엇이 더 클까요? 하나님의 축복이 비할 수 없을 만큼 더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압도적으로 크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일부 말씀을 가지고 교리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의 예화를 들었는데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후손들과 동시대 인물인 맥스 주크라고 하는 사람의 후손을 비교합니다. 맥스 주크라고 하는 사람은 술주정뱅이고 형편없는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근데 그 후손들이 거지가 몇 명이요, 창녀가 몇 명이요, 범죄자가 몇 명이요, 그래서 1300 몇 명의 후손이 다 형편없었더라. 한편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는 청교도 목사로서 그 후손 가운데는 부통령도 있고, 상원의원, 대법관도 있고, 판사는 몇 명이요 교수는 몇 명이요 대학 총장은 몇 명이요 하면서 후손들이 다 이랬다더라 하는 예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예화에 대하여 신뢰하지 않습니다. 후손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간 사람이라 해서 그 후손은 반드시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계에 흐르는”이라고 하는 저주가 DNA처럼 유전되는 일은 없습니다.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도 무슨 DNA처럼 붙어서 유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 주장자의 회개

우리나라에서 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보급했던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2013년에 예장 합신 측 기관지인 『기독교 개혁 신보』에 회개하는 내용으로 기고문을 올렸습니다. 그는 네 가지 사실에 대해서 잘못되었노라 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표현이라고 하면서. 굳이 말할 수 있다면 부모가 잘못된 믿음이 자녀들에게 잘못된 영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부모가 잘못하여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일은 인간 세계에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더욱 큰 일입니다. 부모가 집에서 무심코 목사님 흉을 보고, 또 장로님 집사님 흉을 보고, 서로 편 가르기 하면서 다툼이 일어난다면, 그런 일들을 집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믿음을 갖기 힘듭니다. 즉 부모의 잘못이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부정적인 결과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과장해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 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신자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든 그가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이라면, 그는 그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그런 어려운 환경도 극복해 내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얼마든지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된 교훈입니다.

셋째는 가계의 저주가 유전된다는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아들, 아들로부터 손자 이런 식으로 유전되는가? 마치 DNA처럼, 아니면 x 염색체 y 염색체처럼? 자기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 잘못이다. 저주는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주장은 자신의 잘못을 조상의 탓으로 돌리는 위험이 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조상의 잘못이야,” “아버지 잘못이야, 할아버지 잘못이야,” 이런 식으로 책임 회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잘못했노라 회개하면서 교회 주보에 명확하게 이런 내용을 밝히고, 책을 팔아 받은 인세를 복지기관에 전액 기부를 하며, 이 책은 절판한다고 했습니다.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순종하라

오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주는 무슨 유전처럼 조상으로부터 후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잘못했다면 그 잘못의 부정적인 영향이 자녀들에게 미칠 수 있고, 그래서 결국 자녀들의 양심과 그의 믿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무서운 일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발전해야 하는데 내 잘못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는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언약의 백성으로서 언약의 복에 대하여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순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처럼 대를 이어 저주가 임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잘못이, 나의 불순종의 결과가 자녀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자녀의 머릿속에, 그의 양심에, 그의 믿음에 그대로 투영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어린아이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짊어지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으리라” 한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어떤 순간 어떤 형편에서든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순종하는 자가 되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세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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