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기쁨으로 순종하라(6)_겸손을 배우라(고후 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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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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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순종하라(6)

겸손을 배우라(고후 12:1-10)


순종을 위하여 바울을 훈련시키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순종을 위하여 사도 바울을 어떻게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느 때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육체의 가시, 이것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것을 고쳐달라고 하나님 앞에 세 번씩이나 기도했던 것입니다. 세 번 기도했다는 것은 전심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의 눈에 안질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던 그 다메섹 도상에서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덮여졌고, 그때 사도 바울의 눈에 안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맞는지는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을 때 처음에는 성도들이 그를 얼마나 사랑을 했는지, 할 수만 있으면 자기 눈이라도 빼어 주려고 했었다는 바울의 진술을 보면 분명히 바울의 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사도 바울에게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역자로서 약점이 될 수 있는, 어떤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세 번씩 기도했다는 말을 통해서 그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참 감사한 것은 차갑게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12장 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임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사도 바울에게 충분히 아주 충만하게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육체의 질병, 육체의 가시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육체의 가시는 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쪽으로사용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고 마음 쓰고 불편해하던 문제가 해결이 안 됐는데 그는 도리어 기뻐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저는 교회 안에서 여러 사역자들을 보면서 인간적으로는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들어 사용하시는 예들을 많이 보고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원리는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인간은 외적인 것들에 집착합니다. 목사님이 키도 크고 얼굴도 훤하면 최고 아니겠습니까? 목소리도 좋고, 거기다가 잘 웃고, 거기다가 성도들에게 친절하기까지 하면 최고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것들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스펙들, 학벌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목회를 잘하고 교회도 잘 되는 교회의 목사님들 중에는 약점을 가진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일들을 볼 때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실 때 우리가 보는 것처럼 잘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사울 왕이 왕이 될 때 백성들은 사울의 무엇을 보고 반했을까요? 사울은 키가 크고 잘 생겼습니다. 그는 정말 왕같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외모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할 만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특성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순종이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결정적으로 선고를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렸나이다.” 하나님은 왜 사울 왕을 버리셨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버렸나이다.” 사울 왕에게 결여되었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왕으로서 인간적으로는 가질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문제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가 어떤 사람을 내 밑에 두고 쓰려고 하는데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쓰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순종이 결여된 사람을 사용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순종을 위하여 겸손을 가르치신 하나님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겸손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자로 계속하여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것은 교훈 가운데 아주 강한 교훈입니다.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보다 거절하시는 것이 더 강력한 교훈입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교훈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겸손하지 않고 교만할 수 있는 많은 일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바울은 할 수 없이 이야기한다면서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익명으로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끌려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을 읽을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도 바울은 남 얘기하듯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 하면 자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다. 그곳에서 사람의 말로 말할 수 없는 어떤 말씀을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는 가운데 셋째 하늘이 무엇인지를 말하는데,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라고 이야기합니다(4절). 낙원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고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오는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시 처소로서 천국과 성격이 동일한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엄청난 것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사도 바울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아주 놀라운 체험을 했던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 계시, 즉 계시가 많이 임했습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은혜의 역사가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놀라운 능력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교만을 경계하셨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우리는 이 정도 은혜를 받으면 교만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들의 특성입니다. 아니 우리 인간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사랑하셔서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심으로 그가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것, 즉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체험을 하고 나면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인 것처럼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끝까지 사용하시기 위하여 그를 겸손케 하신 것입니다. 그를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를 연약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기도를 듣지 않으심으로 기도의 능력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로 인하여 원망할 때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면서 지팡이로 바위를 두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세가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이후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모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체험과 은혜 속에 있던 사람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모세와는 대면하여 말을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세에게서 하나님을 만난 증거를 보았습니다. 한 번은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얼굴에 광채가 나는데 사람들이 그 광채를 눈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내가 물을 내랴?” 바위를 깨뜨려 생수를 내는 능력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마치 자기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인 것처럼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은 주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잠 16:18을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하게 되는 순간, 그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그냥 당연히 이제부터 멸망 길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벧전 5:5절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종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선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절). 하나님은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내 독자 이삭을 바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만류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8).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아비 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갖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마침내 약속의 아들 이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 날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천하 만민의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자를 크게 사용하십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일찍 큰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아직 스물이 되기 전에 그는 골리앗 블레셋의 장군을 돌로 쳐서 죽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백성들이 얼마나 그를 높였는지 사울 왕도 그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울 왕이 다윗을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찍 성공한 다윗, 그는 자칫하면 그 성공에 취하여 교만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이 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연단시키셨습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장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다”라고 말씀하실 만한 요소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 요소는 다읫의 겸손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원리는 오늘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마음에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여 순종하는 자를 크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게 사용하실 사람은 겸손을 먼저 가르치십니다. 우리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면,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 우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겸손한 자, 그리하여 주님 앞에 순종하는 자를 크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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