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기쁨으로 순종하라(10)_끝까지 순종하라(마 2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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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30

본문

기쁨으로 순종하라(10)

끝까지 순종하라(마 21:28-32)


결국 누가 순종한 것인가?

오늘 본문은 흔히 두 아들의 비유라고 부르는 말씀입니다. 내용은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이야기했는데 두 아들의 반응이 정반대였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주 시원스럽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 알겠습니다. 제가 오늘 가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싫다고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이 말씀만 보면 순종이란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혹은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본문의 말씀은 개인의 행동에 대해 교훈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개인의 행동을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성전세를 위하여 돈을 바꾸고 제물을 사고 파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상당한 수입원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이렇게 성전에서 장사하는 모든 것들을 뒤집어 엎고 사람들을 쫓아내신 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대제사장과 유대의 장로들이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 따지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무슨 권세로 이런 일들을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성전 관리의 권세는 누구의 권세였습니까?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의 권세였습니다. 성전에서 진행되던 일들은 그들이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권세로 하고 있는 일을 누가 감히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드는가? 와서 따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그들에게 물으신 것은 “세례 요한의 세례는 일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눈치를 보느라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면 “너희는 왜 세례 요한의 세례와 가르침을 안 따르는가?” 즉 “하나님께로부터 왔는데 왜 순종하지 않았는가?”라고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는 많은 백성들의 반발이 예상되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첫째 아들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답은 시원하게 하지만 결코 순종하지는 않는 모습, 이것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실리주의 편의주의의 문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율법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성전을 자기들의 이익의 재료로 삼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성전 안에 이와 같은 편의주의, 혹은 실용주의를 동원하고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세로서 합당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예배 함에 있어 실용주의는 항상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용주의는 사람들의 편리를 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의 원리가 있지만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것입니다. 과거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열 지파를 데리고 나가 북이스라엘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남쪽 유다 왕국과 경쟁할 때 자신이 몹시 불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쪽 유다 왕국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취한 일이 실리주의, 편의주의였습니다. 북쪽에 있는 백성들에게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도록 두 곳을 하나님께 제사하는 장소로 지정했습니다. 불편하고 힘들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필요 없이 두 곳 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께 올라가는 날짜를 바꿨습니다. 특별히 7월의 절기는 추수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참 바쁘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일정을 한 달 뒤로 미뤄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편리를 따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과 시간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예배의 원리는 항상 두 가지 원리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대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것들은 인간들이 자기의 편의를 따라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후 우리의 예배 원리는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대로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편리, 편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의 정신, 예배의 원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해진 사간을 기억하고 우리의 모든 생활 주기를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정리 정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용주의와 편의주의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얼마나 큰 해악이 되는지는 이미 교회의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편리주의, 혹은 실용주의가 득세하면서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권세로 된 일이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이 자기가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 순종해야 진정으로 참된 권세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세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자기들이 가진 지위와 직분에 근거해서 자신들이 정한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순종해야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로서 합당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 참된 권세자인가?

마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예루살렘에 오셔서 이제부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큰 경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앞뒤를 보면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어린아이들의 찬양이 있었고, 사람들은 나뭇잎을 깔고 옷을 깔아 예수님께서 지나는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겸손하였다고 해서 그의 권세까지 부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겸손한 왕으로 오셨지만 그분의 권세는 세상의 그 누구의 권세보다 높은 권세였습니다. 이것을 알고, 이것을 믿고 그 앞에 순종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직면한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성전 예배의 참혹한 모습은 이미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중에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드시려고 가보니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저녁에 예루살렘 성을 나올 때 보니까 이 나무가 말라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단순한 사건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앞으로 가셨는데 잎만 무성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특성상 잎이 무성하면 당연히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비유 중 첫째 아들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습니까? 잎은 무성한데 열매는 없는 무화과, 이것이 첫째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권세를 받았다고 자부하고 있는 대제사장이나 백성의 장로들의 모습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에게 와서 누구의 권세로 이런 일을 하였느냐고 따지면서 자기들의 권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권세가 없는 자들이 오히려 권세 있는 분에게 따지는 역전된 권세에 대한 말씀이 본문 다음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 이야기입니다.


권세의 역전을 꾀하는 사람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일꾼들에게 맡기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세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주인이 보내는 종들을 때리고 모욕하고 세를 주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결국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될거야 하면서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포도원 주인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무도한 농부들을 심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권리가 없는 자들이 그것을 불법으로 찬탈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맡은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권위를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권세를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의 유익을 강제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 꿇은 자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승복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있어야 그에게 주어진 일들이 비로소 그의 것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제사장의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백성의 장로 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구속사의 경륜 속에서 순종의 의미

마 2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속사의 경륜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사탄에게 상실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 계획 가운데 한 구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율법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소유,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답을 참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를 보면 첫째 아들과 같았습니다. 언약식을 할 때에는 얼마나 진실된 모습으로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결국 첫째 아들과 같은 역사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셔야 마땅하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지켜 행하면 너희가 내 소유, 내 백성,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들이 폐지가 되는 겁니다. 이게 언약의 특성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유다 백성들에게 이 언약의 폐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나라 개념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할례를 받으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다라고 자랑하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줄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무효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정식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언약도 율법도 다 폐지되는 것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뜻입니다. 아담이 순종하지 않아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사탄의 나라가 되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원래의, 아니 더 영광스러운 것으로 돌리기 위하여는 순종의 회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의지하여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 종말의 순간에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죄인들을 회복시키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덕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가 마땅히 훈련받고 실천해야 하는 덕목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순종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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