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5) _진리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요 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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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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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5)

진리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요 1:14-18)


말씀은 인격적인 존재이며 생명의 빛이시다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18절까지는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으로서 앞으로 진행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이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존재하시게 된 이전에 이미 이분은 존재하신 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그분은 “말씀”이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말씀은 헬라어로는 “로고스”(λόγος)인데 이것은 흔히 “이성”으로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의 “로고스”에는 정관사 “호”(ὁ)가 붙어 있습니다. “호 로고스”(ὁ λόγος)인 것이죠. “호”(ὁ)는 남성 정관사입니다. “로고스”를 “호 로고스”라고 하면 인격을 가진 존재를 의미하게 됩니다. 즉 태초에 “로고스”라고 부르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계셨던 이 인격적인 존재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사도 요한이 전했던 진리의 말씀(로고스)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다음 사도 요한은 말씀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3절). 그리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생명이 사람들의 빛인 이유는 사람들은 어둠, 즉 모두 죽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빛인 생명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진 고통과 괴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오직 유일한 소망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그 안에 계신 말씀은 죽음의 어둠 가운데 있는 존재들에게는 참된 빛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생명의 빛이 죽음의 어둠 속에 있는 존재들에게 비추었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빛을 찾지 않는 불쌍한 어둠의 존재들에게 빛에 대하여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었지만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절).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욕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3절). 그런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11절). “자기 백성”은 누구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 즉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한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이 반포되었고, 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 됨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그 나라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 가운데 보내시고 생명의 빛을 비추셨으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왕권을 상속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의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창조주 하나님이셨는데 이분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 가운데 함께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분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에 머물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분의 말씀은 권세 있는 자들의 말씀과 같도다.” “권세 있는”이란 “하나님께서 주신”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포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평범한 말씀으로 듣지를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으로 참된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거하셨지만 우리와 동일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을 전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났고 그 말씀 앞에 사람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눈 먼 자가 눈을 뜨게 되었고 중풍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시며,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영생이 선물로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선포할 때 말씀의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찬란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 선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영광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두시고 교회에 하나님의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가지고 우리 앞에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본질, 그분의 탁월한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말씀 안에? 말씀 자체

어떤 분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성경은 사람의 글인데 이 글 중에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것은 인간의 말이라고 해석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인간의 책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말씀을 제거하면 하나님의 말씀만 남겠죠. 이것은 진리를 훼손시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성경의 말씀이 내 마음에 와서 부딪힐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외에 성경 해석을 다르게 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이 누구신지, 그분이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그 일이 도대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지성에, 우리의 감성에, 우리의 의지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고, 진리의 세계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되면서,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역사하는 성령

교회는 참된 진리를 보존해야 합니다. 이때 참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즉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 자신이시면서 창조주이시라는 사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깨달아 알고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복음의 핵심이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 복음이 세세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탁월한 영광이 생생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 나타남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인격이신 그분이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우리와 인격적인 교제를 이루는 영광스러운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쉴라이어마허의 종교론 강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1799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강의에서 참된 종교의 본질은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적 존재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속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만 경건하면 되지, 성경이나 교리나 이런 것들은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성경이 어떻든지 교리가 어떻든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경건함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주장이 어느 정도 그 시대를 위해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성경과 진리의 가르침을 주변적인 것으로 여긴 그의 주장은 이후에 독일 교회를 전혀 다른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신학교의 신학 연구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경을 존중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대하여 자기들 소견에 옳은 대로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감정이나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리가 최고”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의 감동,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 그냥 교리만 붙들고 있으면 되는 거야.”라고 주장한 분들이 있습니다. 양극단으로 간 거죠. 한쪽은 감정만 있으면 돼. 한쪽은 교리만 있으면 돼. 이렇게 주장을 한 겁니다. 이 모든 주장들은 극단적인 주장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항상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와 성령의 역사가 함께하여 우리의 영혼 속에서 진리의 체험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 신학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될 때 성령이 역사하여 진리가 우리 속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진리와 함께 역사할 때 우리 속에서 깨달음이 일어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과 은혜가 한량없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진리와 더불어, 성령께서 진리와 함께 함께하시는 이것이 참 교회가 말씀을 선포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을 가지고 사역하게 하사 진리로 우리를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통치자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에게 이렇게 임해야 합니다. 말씀의 선포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역사가 우리에게 살아나야 합니다. 이런 은혜의 역사가 우리에게서 사라지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역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이 시대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가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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