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5)_하나님의 기쁨(시 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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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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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5)

하나님의 기쁨(시 153:1-6)



지식과 사랑, 그리고 기쁨의 선순환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사랑함,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함이 어떻게 하나의 생명력 있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지식은 우리 영혼 속에 그분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그 사랑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동력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번 메시지에서 붙들고 있는 대주제는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입니다. 이 명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적 도전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도 기뻐하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나도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이 즐거워하는 풍경을 나도 함께 즐기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오늘 시편 135편의 말씀을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과연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구원과 삶에 어떤 놀라운 의미를 갖는지 깊이 있게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찬양의 마땅한 근거

시편 기자는 성전 뜰에 서 있는 자들, 즉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인 모든 성도를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찬양은 성도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라면 마땅히 터져 나와야 할 영혼의 반응입니다. ㅡ"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 (시 135:5) 세상에는 사람들이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숭배하는 존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 혹은 가시적인 우상들까지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그 모든 존재는 참된 신이 아닐 뿐더러, 제아무리 능력을 위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위대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위대하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오직 위대하신 분이며,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에 가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품, 즉 그분의 위대하심 그 자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기쁨과 그 사역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막연한 추상 관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행하신' 구체적인 일들 속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특히 두 가지 사역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시 135: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우리를 당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마음을 멈추게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를 위하여"라는 구절입니다. 많은 성도가 구원을 "나를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희생"으로만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고백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성경의 깊은 논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인을 멸망 가운데서 구원해낼 존재가 이 땅에 누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당신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 그리고 사랑이라는 위대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난 최고의 현장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시 135:6)

천지 창조 또한 하나님의 기쁨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게 하기 위해 에덴을 만드시고 우주를 준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것은 어떤 외부의 강요나 필연적인 법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속에서 이것을 기뻐하셨기에 자발적으로 창조를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쁨을 따라 온 우주를 펼치셨고, 바다의 깊은 곳까지 당신의 뜻을 새겨 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기중심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표현에 서운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결국 자기 영광만 챙기시는 분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겸손'이라는 덕목을 하나님께 잘못 적용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가령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 행사에 참석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자리에 대통령의 은사나 부모님이 계신다고 해서 대통령이 자기 자리를 양보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겸손이라 칭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국가의 권위를 망각했다"고 비판할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세를 상징하기에, 그 위엄을 누구에게도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직분도 이러할진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땅과 하늘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피조물이나 다른 우상에게 양보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누구에게 양보한다면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우주의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질서를 지키시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거룩한 행위입니다. 구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해야만 하는 법칙이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기쁘신 뜻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구원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헨리 스쿠걸의 통찰: 영혼의 가치와 사랑의 대상

우리는 여기서 17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의 통찰을 빌려와야 합니다.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소천했지만, 그의 저서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기독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스쿠걸은 이 책에서 매우 충격적이고도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습니다.

"한 영혼이 가지는 가치와 탁월함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측정된다."

이것은 영적인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저급하면 그 영혼도 저급해집니다. 돈을 가장 사랑하는 영혼은 돈의 수준에 머물고, 쾌락을 사랑하는 영혼은 쾌락의 덧없음을 닮아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대상이 아름답고 고상하면 그 영혼도 탁월해집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 이렇게 확장했습니다.

"하나님의 탁월하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당신의 영광)에 의해 증명된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당신의 영광을 사랑하시기에 가장 탁월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이 가장 탁월한 존재인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 영혼 또한 세상이 줄 수 없는 최고의 가치와 탁월함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조지 휘필드(George Whitefield)는 스쿠걸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태어났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부모님이 믿는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인 것도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이 하나님의 생명은 곧 '믿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 영혼 속에 심겨진 이 생명은 살아있기에 반드시 성장합니다. 스쿠걸은 이 생명의 나무에서 네 가지 가지가 뻗어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가장 영광스러운 분을 사랑하기에 영혼을 가장 탁월하게 만듭니다.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을 함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성결: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려는 열망입니다.

겸손: 하나님의 위대함 앞에 자신을 낮추는 마음입니다.


이 네 가지 가지 중 으뜸은 단연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배를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고역일 수 없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경건의 시간과 봉사의 자리는 기쁨의 현장이 됩니다.


하나님의 열심(Passion): 자신의 영광을 향한 뜨거운 마음

존 파이퍼 목사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을 정리하며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열심'은 영어로 'Passion'입니다. 이것은 마음에서 불타오르는 뜨거운 열정, 즉 '열정적인 기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일을 열정적으로 기뻐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무한히 사랑하고 기뻐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뜨거운 기쁨이 아니었더라면, 죄인인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정적인 기쁨'**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의무'에서 '기쁨'으로 전환됩니다.


기쁨의 회복과 성도의 승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끊임없는 성장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그분에 대한 사랑은 우리 마음속에서 더 크게 타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커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함께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기뻐하시기에 우리도 그 영광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죄인의 구원을 기뻐하시기에 우리도 그 일을 기뻐하며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은 약속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리에 설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힘이 되시고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며, 그 어떤 고난도 꺾을 수 없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힘입니다(느 8:10). 억지로 참으며 신앙생활 하지 마십시오. 인내의 열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힘겹지 않습니다. 예배의 시간이 기다려지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영광이 됩니다. 2026년 한 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그분을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아 하나님을 온전히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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